소설가

괴산에 다녀왔다. 예전 같으면 여기에 한 마디가 더 붙었을 것이다. “괴산에서 열린 홍명희 문학제에 다녀왔다”라고. 그러나 몇 년 전부터 괴산에서는 홍명희 문학제가 열리지 않는다. 아니, 열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열지 못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괴산군민들의 반대 때문이라고 하지만 몇몇 단체들의 반대 때문이다.

벽초 홍명희는 우리 고장 괴산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이며, 정치가이다. 동시에 우리 문학사에 있어 독보적인 ‘임거정’을 쓴 소설가이기도 하다. 그의 아버지 홍범식은 금산군수로 있던 중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제일 먼저 자결한 분이다. 부자가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주의자이다. 이런 홍명희가 고향인 괴산에서 배척을 당하는 것은 북한에서의 전력 때문이다. 홍명희는 해방정국에서 백범 김구와 함께 우리민족의 통일을 논의하기위해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했다가 내려오지 않았고, 가족들도 모두 월북했다. 그리고 홍명희는 북한에서 여섯 명 중의 한 명인 부수상을 지냈다. 이것 때문에 벽초 홍명희는 빨갱이로 낙인 찍혀 그의 문학사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와 관련된 모든 행사를 괴산에서는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아침 일찍 전세버스를 타고 괴산 홍명희 생가에 당도하니, ‘홍명희는 북한김일성에 충성한 6·25의 전범자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밑에는 상의군경회, 미망인회, 유족회 괴산군지회라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소속을 밝히고 있었다. 6·25전쟁으로 인해 그분들이 겪은 고통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화해의 시대이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이데올로기의 망령 속에 살아왔다. 그리고 서로들에게 너무나 많은 상처를 입혀왔다. 이제는 하루빨리 망령 속에서 벗어나 화해하고 통일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 대통령들이 평양을 방문했고, 얼마 전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의 전승절에 참석하여 인민해방군들의 군사 퍼레이드까지 참관했다. 이런 시대에 무슨 캐캐묵은 이념 대립이란 말인가. 홍명희 문학제는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했다. 이미 20년 전부터 괴산과 청주를 오가며 문학제를 개최하여 다채로운 행사를 해왔다. 군 단위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여러 문화행사였다. 그리고 우리 고장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석했다. 올해는 멀리 부산에서도, 또 전라도 부안에서도 일반 시민들이 새벽부터 자신들의 승용차를 이용해 홍명희 문학제에 참석했다.

‘태백산맥’을 지은 작가 조정래와 만화가 박재동 화백도 참석했다. 홍명희라는 작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문학은 만리향처럼 그런 것이다. 따라서 홍명희 같은 인물을 가지고 있는 괴산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큰 자산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강원도 봉평은 궁벽한 산골 면임에도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단편하나로 일 년 내내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명소가 되었다. 괴산군민은 활용해야 할 중요한 자산을 이념을 내세워 썩히고 있는 셈이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 때도 홍명희 문학제는 열려왔다. 얼마 전에는 괴산의 모 단체에서 홍명희문학제를 임꺽정문학제로 명칭을 바꿔 개최하려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일어났었다. 진정으로 홍명희의 북한에서의 전력이 문제되고, 자신들의 소신이 그토록 투철하다면 위 단체들은 처음부터 반대를 했어야 한다. 그런데 유독 현 정부가 들어서며 숨어있던 망령들이 되살아나듯 새삼스럽게 반대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시대착오적인 망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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