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요즘 중·고등학교 교실에 들어가 보면 안경을 쓰고 있는 학생이 너무도 많다.

그런데 안경을 쓰는 학생들이 많아진 이유에 대해 안경점을 운영하는 어떤 사장님이 “예전에는 안경을 쓰는 이유가 책을 열심히 보느라 근시가 되어서였지만, 요즘 학생들이 안경을 쓰는 이유는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등에 탐닉한 나머지 지나치게 눈을 혹사해 그렇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럴싸한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시내버스를 타든지, 거리를 걷든지 하다보면 젊은이들이 끝없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무엇인가 검색을 하거나 게임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렇게 작은 글씨나 그림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여다보니 눈에 무리가 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더욱 근심스러운 것은 젊은이들 중의 상당수가 정상적으로 듣지 못하는 난청이 많다는 것이다. 10대의 난청이 60대의 2배 이상이나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보니 젊은이들의 난청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난청의 상당수가 소음성 난청이고 그 이유를 젊은이들이 자나 깨나 이어폰을 끼고 산다는 것에 두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스마트폰에 이어폰을 연결해 귀에 꽂은 채 다시 스마트폰을 검색하면서 거리를 걷는다. 밖이 시끄러우면 시끄러울수록 볼륨을 더욱 크게 틀어놓고 요란한 음악을 들으며 생활을 하다 보니 난청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확하게 볼 줄도 모르고 확실히 듣지도 못하는 학생들을 앞에 두고 보면 참으로 답답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교육현장에서는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이들 우리의 젊은이들이 과연 균형 잡힌 생각을 가지고 건전하게 성장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심각하게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눈이 근시가 되면 안경으로 교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견딜 수 없이 불편하다면 라섹과 같은 현대의학의 힘을 빌리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귀 역시 마찬가지이다. 소음성 난청이든 다른 원인에 의한 난청이든 보청기를 사용할 수도 있고 더하면 의학을 힘을 빌려서라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균형 잡히지 않은 시각으로 학문을 대하고 세상을 바라보고, 곧고 바르게 성장하지 않는다면 이는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근시도 원시도 아닌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볼 줄 알고 난청도 없이 정확하게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힘을 키워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물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가르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교사일 것이다. 교육의 일선 현장에서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가 바른 사고와 정확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으로 학생을 지도하는 한 우리의 학생은 바르고 곧게 성장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교사는 늘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 먼저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정상적인 귀로 세상의 소리를 듣고 있는지 뒤돌아보아야한다. 교육과정에 충실하면서도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고 학생을 대할 때 우리 대한민국의 장래는 밝다. 또한 중요한 것은 젊은이들이 근시가 되거나 난청이 되는 이유가 단순히 교육현장에서만의 이유가 아닌 것처럼 젊은이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 역시 이들 젊은이들이 곧고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바른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을 검색해야만 할 만큼 시끄럽고 복잡하고 유혹이 많은 사회에서 젊은이들이 어찌 곧고 바르게만 성장할 수 있겠는가? 근시도 많고 난청도 많은 요즘 젊은이들이 생각만이라도 곧고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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