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보건과학대학교 교수

태풍이 지나면서 비를 퍼부었다지만 아직도 해갈이 안되고 가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오늘은 더위가 기승을 부리며 절정을 이루는 ‘대서’이다. 이 더위를 피하는 것은 짜증을 내지 않고 몰두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요즈음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께서 전화를 자주하신다. “너 어디니? 나 잘 있으니까 시골에 오지마 알지?” 하시면서 전화를 한다.

“예, 바빠서 못가요”라고 대답을 하고 나면 또 같은 말로 확인전화를 여러번 하신다. 계속 받지 못할 상황이 돼 전화를 안 받으면 수십번 전화 벨이 울린다.

그럴 땐 어머니께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일보고 시골로 간다. 별 수 없이 상추와 토마토를 따 놓았다고 싸가지고 가라 하신다. 이러한 일이 자주 생기니 한군데 집착만 하는 편집증세인가? 노인성 질환의 치매초기 증상인가? 걱정도 된다. 그러면서 화가 치밀고 어떤 때는 짜증이 난다. 어머니가 그렇게 하는 이유를 도외시하고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지내는 일이 다반사다.

내 입장과 어머니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말을 음미하며 마음을 추스르면 어머니에 대한 짜증이 슬그머니 없어지기도 한다. 역지사지는 일상의 생활 가운데 통용되는 것으로 다른 사람의 입장(立場)에서 나를 헤아려보라는 말이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내 입장에서 생각하니 노인에 대한 태도에 성실하지 못해 노인을 대하기가 귀찮다고만 여긴다.

어머니는 주위에 벗들이 없고 책도 읽지 않으며 컴퓨터 할 줄도 모른다. 오직 자식만 바라보고 자식을 위해 무얼 해줄까? 자식이 시골에 머물러 같이 있어주기만을 바라는 것 같다. 홀로 더위를 극복하기 위해 책을 보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자식에게 줄 상추나 고추, 마늘, 콩 등을 따서 정리하는 일을 하신다. 그것이 일상이다.

어머니는 도시에서 추구하는 취미교실 소위 민요, 가요, 에어로빅반에 들어 활동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친구와 모여 취미 생활하는 자체를 모르신다. 취미생활의 필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모르신다. 그러한 환경에서 살아오셨기 때문에 마냥 가족만을 위해 사셨던 어머니이기에 자식에 대한 입장을 모르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그러게 살아오신 어머니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곳에 나를 억지로 맞추려니 나름대로 짜증이 나고 나의 생활이 구속되는 느낌도 있다. 그래서 요즈음은 그려려니 하면서 마음을 다독인 적도 있다.

부모님의 정을 느껴보지 못하고 갈 곳 없이 방만 지키는 도시의 생활 속에서 정겨운 시골생활은 삶의 활력을 불어넣고 생기를 주며, 어머니가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참 행복하지 않겠는가? 그 구심점이 시골에 사시는 어머니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야 한다. 살아계신 어머님께 효도할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보고 어머니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짜증내지 않고 살아보자.

어머니와 같은 처지로 외롭고 쓸쓸하며 역할이 상실돼 갈 때, 아들에게 전화를 해도 아들이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고 핀잔을 주고 잘 받지 아니하면 나의 기분이 과연 어떨까? 생각해보면 어머니께 잘 해드려야 하겠다는 마음이 들 것이다.

기회라는 놈은 그리 인자하고 친절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언제나 뒤를 돌아보지 않고 제 갈 길을 가버리는 놈이기에, 돌아가시고 나서 효도할 기회가 없었다고, 효도할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는 한탄보다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기회를 잘 잡는 것이 중요하다.

이 더위에 우리는 남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나아가 긍휼히 여기는 넓은 마음을 갖도록 해 더위를 이겨보자.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