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따라 금강에서 황해로-박범신 작가 인터뷰

지역의 경우 더욱 문화적 비전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작가는 경제(돈) 아니면 행복할 수 없다는 개발 논리가 우리들의 머릿속에 언젠가부터 세뇌돼 있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문화적 비전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까.

“의식 대전환을 이룰 수 있는, 국민 대중에 의한 사회운동이 생겨나야 한다. 국민행복지수가 세계 1위라는 부탄이라는 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이 2천 달러에 불과하다. 소득수준과 달리 국민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이유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한다. 부탄만의 특별한 정책 중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부수고 허무는 일보다는 히말라야 수자원 같은 천혜의 자원을 최우선으로 보호한다는 점이다. 발전은 이루되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한다. 지속가능하지 않을 경우 발전도 포기하는 것이 부탄이다. 보호하고 발전하는 방법 역시 우리와 다르다. 모든 부탄의 정책은 국민행복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고아가 생기면 이웃이 돌보고 이웃이 안되면 절이 돌본다. 공동체가 힘 있게 살아 있는 것이다. 우리가 눈여겨 볼 일이다. 지난 몇십 년 간 몇 배 부자가 되었지만 우리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낮다. 당장의 일시적인 발전을 추구하다보니 부모나 이웃보다 돈이 가치 있는 사회가 돼버렸다. 이러한 현상이 복지 분야에서 심각하게 부메랑 돼 돌아오고 있다. 홀로 사는 노인이 아무도 모른 채 죽어가고 갓 출산한 아기들이 키울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버려진다. 개발 이데올로기가 낳은 문제점들이다. 공동체 가치가 훼손되는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100년 200년 후를 생각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지 않으면 미래도 없다.”

무조건적인 개발이 결국 현재에 와서는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했고 많은 국민들이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이러한 생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결국 정부보다 국민 스스로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회현상에서 현재의 국민 개개인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서울시에 사는 사람이나 논산에 사는 사람이나 그들이 누리는 문화적 혜택이 같아야 한다. 서울 사람은 고급문화를 접하고 논산시에 사는 사람은 그 기회를 얹지 못한다면 논산사람들은 상대적 빈곤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우리의 문화콘텐츠 생산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콘텐츠를 서울과 같은 대도시 중심에서만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전국 어디서나 공평하게 문화 콘텐츠를 향유할 수 있는 인프라가 깔려 있어야 한다. 물론 어려운 문제도 있다. 예를 들면 중앙 정치무대를 통해 수혈되는 문화가 농촌마을 이장선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본다.”

작가는 이 모든 총체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결국 우리 문화의식이 ‘불’이 아닌 ‘물의 정신’을 되찾는 일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다시 강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오염되고 망가지고 있는 강의 물줄기를 복원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내 고향 강경마을을 보더라도 오래전 복어의 집산지였다. 하지만 지금 금강에 복어가 없다. 금강 생태계가 파괴된 것이다. 황해 바다와 맞닿아 있는 금강 하구 둑을 허물어야 한다. 오래전에는 한 톨의 쌀이라도 더 생산해야 한다는 정책 때문에 농업용수로서의 하구 둑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그로인해 오염된 물길을 복원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 됐다. 그렇다면 정책도 달라져야 한다. 충남도가 정책적으로 하구 둑을 허물어주기를 바란다. 강물은 자연스럽게 바다로 흘러가야 한다. 하구 둑을 막아 강이 우리들 삶에 부여하는 경제성과 홍수예방이나 농업용수로서의 경제성 중 무엇이 더 나은지 입증되지 않은 셈이다. 입증되지 않은 경제성을 전제로 강을 망가트리고 있다. 위험한 일이다. 현재 금강의 반은 죽었다고 봐야 한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 4대강 사업과 같은, 인위적으로 물줄기를 막는 것은 영원히 성공할 수 없다. 더욱이 4대강 보를 유지·관리하는 일에만 천문학적인 숫자의 예산이 소용된다고 한다. 자연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직선으로 곧게 펴는 일이나 물길을 막는 것과 같은 단순한 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가 과도기다. 자본주의적인 생산성이 중요했던 시대를 지나 그것이 결국 우리들에게 불행을 가져다줬다는 실증적 경험을 하게 되면 우리들 삶의 방향도 달라질 것으로 본다. 우리 모두가 돈의 노예처럼 돼 있는데, 누구나 이 삶에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언젠가 우리 각자가 변하려는, 행복해지려는 노력이나 인식전환을 하지 않겠는가?”

작가의 생각대로 현재가 과도기라면 언젠가 국민 스스로 변화를 이루어 ‘물의 시대’로 되돌아 갈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태초에 물(강)은 생명을 잉태했고 그 생명을 생존하게 하는 삶의 터전이 되어 인류의 생성과 발전을 이끌어 왔으므로. 그리하여 물(강)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면서 문화예술 창작의 원천이며 진보와 새로운 도약을 위한 에너지원이다.

그 강의 중심에는 늘 사람이 있다. 더불어 박범신 작가가 존재한다.

작가는 최근 16년 전 처음 초고를 낸 두 권 분량의 장편소설 ‘침묵의 집’을 줄이고 수정해 한권 분량의 ‘주름’이라는 제목으로 개정판을 냈다. 두 번째 개정판인 ‘주름’에 유난히 애착이 가는 이유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이처럼 집요하게 한 작품을 붙들고 있기는 처음이다. 혹 알 수 없는 일이다. 다시 7~8년이 지나고 나면 또 깎아내는 짓을 할는지. 깎아 내고 깎아 내고 하다가 마침내 단 한 줄로 삶의 유한성이 주는 주름의 실체를 그려낼 수 있게 된다면 그때 아마 나는 작가로 성숙했다는 느낌을 가질 것이다.”

버리고 또 버리며 가볍게, 자연스럽게 물처럼 삶이 흘러가기를 바라는 작가의 작품관이며 인생관을 보여주는 말이다.

결국 그 자신이 말해 왔던 물(강)의 속성을 작가 자신이 고스란히 닮은 것이다. 문단의 대가라는 호칭에 걸맞지 않게 그는 ‘주름’이나 ‘은교’와 같은 남녀 간의 사랑을 소재로 한 작품에 대해 독자들이 부도덕한 러브스토리로 읽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작가의 소박한 성향이 결국 부드럽고 유순한 금강의 상징이지 싶다.

작가는 ‘주름’ 개정판을 내면서 그 인세를 네팔에 보내고 있다. 유난히 히말라야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작가로서 최근 발생한 네팔 지진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모양이다. 혼자만 잘 살아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상생(相生)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는 일이다. 초기에는 현실 비판적 단편소설들과 아울러 감성적 문체, 역동적 서사가 잘 어우러진 여러 장편 소설로 독자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문단데뷔 40년이 지나도록 현역 정신을 버리지 않는 ‘영원한 청년작가’를 지향하며 인간 내면을 탐구하는 뛰어난 작품을 잇따라 발표, 우리나라 대표작가로 자리 잡았다.

논산시 가야곡면에 머물며 집필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는 1961년 강경읍으로 이사, 원광대 국문학과, 고려대 교육대학원를 졸업했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여름의 잔해’가 당선돼 등단할 때까지 강경읍 채산동에 살았으며 소설 ‘겨울강 하늬바람’으로 대한민국 문학상,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로 김동리 문학상, ‘더러운 책상’으로 만해문학상, ‘나마스테’로 한무숙 문학상을 수상했다. 특히 ‘읍내 떡빙이’, ‘시진읍’, ‘더러운 책상’, ‘들길 1.2’, ‘논산댁’, ‘소금’ 등은 금강이 품고 있는 강경읍 일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외에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불의 나라’, ‘물의 나라’, ‘흰 소가 끄는 수레’, ‘촐라체’ 등 수많은 작품을 썼다. 아직 ‘청년작가’라고 불리는 작가에게 말년이라는 표현이 무색하지만, 그는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금강과 고향에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으려는 의도일까.

작가로서 자신의 역할은 지역문화가 고스란히 담긴 작품을 쓰는 일이다. 이미 작가초년기에 금강과 논산시를 소재로 수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아쉬움은 여전하다. 수도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좀 더 화급한 주제를 따라가다 보니 금강유역 사람들의 이야기가 뒤로 미뤄졌다는 것. 금강유역 사람들의 이야기를 유장하게 쓰고 싶다는 작가는 아직 구체적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탑정호가 내려다보이는 논산 조정마을에 머물고 있는 작가는 곧 금강유역 사람들의 유순하고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원고지에 남길 것이다. 스스로와 혹은 금강과의 약속일 테니.  김정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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