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따라 금강에서 황해로] 박범신 작가 특별인터뷰<上>

▲ 충남 논산시 고향에 집필실을 마련해 놓고 작업에 몰두 하고 있는 박범신 작가. 그와 함께 ‘이 시대에 왜 다시 물(강)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우리 민족은 ‘물의 속성’을 닮았지만 언젠가부터 ‘불의 성질’로 변해가고 있다며 이제 다시 물의 성질을 닮은 민족으로 되돌아가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에 ‘강’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탑정호가 내려다보이는 그의 작업실에서, 옆에 배롱나무는 그가 청년기를 보낸 강경을 무대로 한 장편소설 ‘소금’에 등장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금강, 반만년 우리 민족 먹여살린 허리”

 시민·독자들과 고향길 걷기 운동 진행

“4대강 사업은 자연의 순리 거역한 사업”

 

아, 금강! 백제의 고도 공주 부여를 지나온 황톳물이 성동벌판의 끄트머리를 낮은 포복으로 쓸고 내려와 ㄹ자로 휘돌며 이윽고 강경포구를 자애롭게 쓰다듬는다. 강물은 여한이 없다. 질펀한 갈대밭을 좌우로 거느린 채 나바우성당 솔숲을 건드릴 듯 흘러가고 말면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광활한 성동벌판도 그곳에선 손금처럼 내려다보인다.
일찍이 동학군 십만 명이 파죽지세 우금치로 나아가기 전 진을 쳤었다는 벌판을 한눈에 품어 안으면 가슴에선 사뭇 모닥불이 타오른다. 강의 벌판은 잘 어우러져 가름 없이 한통속이다.
운무 속으로 쑥 물러 앉아 멀리 계룡산 서기와 합장한 야트막한 산들의 연접도 보기 좋다. 갈대밭에서 날아오르는 새떼들이 연방 옥녀봉과 돌산 꼭대기를 차고 넘는다. 안개 낀 날의 새벽 강은 더욱 웅숭깊고 찰지다.  

박범신 장편소설 ‘더러운 책상’ 중에서

 

충남 논산시 연무읍에서 태어나 단편소설 ‘여름의 잔해’로 신춘문예에 당선되기까지 강경에서 살았던 소설가 박범신(69).

그가 몇 년 전 다시 고향 논산시 탑정호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집필실을 마련하고 머물며 “평생 고향 금강에 기대 살았고 다시 말년에 돌아와 금강의 품에서 살고 있다”고 말한다.

소설가로서 그의 의식 깊은 곳에 고향과 그 고향의 생명줄기인 금강에서 한순간도 비껴간 적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작가로 데뷔한 후 초기의 많은 소설들이 논산과 강경, 그리고 금강이 배경이 되거나 소재가 됐으며 최근 발표한 장편소설 ‘소금’에 이르기까지 그의 소설에서 고향은 이야기를 아무리 캐내도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존재다.

그의 성장소설이기도 한 장편 ‘더러운 책상’에서 묘사했듯이 그에게 금강은 자애롭고, 웅숭깊고 찰지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 바라본 금강의 모습이지만 이는 곧 작가가 10대 때 생각한 금강의 풍경이다.

수십 년이 지나 다시 금강의 품에 와 살고 있는 그에게 강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강으로 인한 사람들의 삶은 많은 것이 변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작가가 생각하는 강은 어떤 속성을 갖고 있는 것일까.

“우리 민족성은 물에 가깝다. 서양에서 우주 생명을 구성하는 4대 원소가 물 불 바람 흙이지만 불교적인 관점에서 동양은 허공이 더해진다. 이들 5대 원소가 균형을 이룰 때 우주가 건강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이 5대 원소 중에 더욱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물이다. 물은 나머지 모든 원소를 품을 수 있는 생명의 원천이며 근원이다. 물은 생명을 잉태하는 어머니이며 관용이며 문학을 비롯해 모든 문화예술의 표상이다.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물을 닮았다. 그러나 해방이후 반세기를 거쳐 오는 동안 물을 닮은 아름다운 공동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개발이라는 이데올로기가 강해지면서 물 보다 전투적이고 욕망이 강한 불의 가치가 강자가 돼버렸다. 그것이 결국 우리나라를 부강하게는 만들었지만 그로 인해 물의 가치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관용이나 배려를 기반으로 하는 물의 성질을 잃고 불의 민족이 돼 가면서 오히려 사람들이 행복해 하지 않는다는 작가는 이 시대에 다시 왜 물이 중요한지, 왜 강의 가치를 되찾아야 하는지를 역설한다.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모두 불덩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가족이나 이웃보다 내가 중심인 세상이다. 화(禍)가 많아졌다. 이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면 불의 성질이다. 덕성이나 관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오래전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던, 관용과 이해와 배려가 기본이었던 물의 민족성을 회복해야 한다. 한 두 사람의 노력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정치를 믿을 수도 없다. 대중 모두가 나서는 문화의 대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불이 강해 다들 타죽을 지경이다. 물의 영혼, 물의 본질을 닮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강에 주목을 해야 한다. 4대강 사업은 물의 본질을 버리고 불의 논리(개발, 발전)로 물을 다스리려 한 일이다. 수천 년 있어온 자연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굽은 강물은 그대로 둬야 한다. 굽은 것을 편다든가, 막는다든가 하는 인위적인 힘을 가해 자본주의 원리인 생산성을 유발하려는 것이 4대강 사업이었고 그것이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는 사업이 됐다. 고대사회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왜 사람들이 강 주변에 모여 사는 걸까? 생각해보면 그 안에 답이 있다. 사람들이 강으로 향하는 마음, 강으로 오라는 물의 속삭임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현재의 불행을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물길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는 작가에게 금강에 대한 애착은 더욱 남다를 수밖에 없다. 금강은 전라도 장수군에서 발원해 충북 옥천과 영동으로 거슬러 올라와 다시 세종시를 거쳐 논산 강경으로 흘러 황해로 나아가는, 약 400km에 이르는 물길이다.

다른 강들과 다르게 국토의 중심부를 아래서 위로 차고 올라와 다시 황해로 나가는 독특한 물길인데다 반만년 우리 민족의 먹을거리를 담당해온 곡창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작가가 강조하는 금강의 가치는 무엇일까.

“금강 주변의 넓은 벌판에서 쌀을 생산해 그것으로 우리 민족이 먹고 살았다. 한강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 한복판에 놓였던 격전의 강이라면 금강은 우리 민족의 허리이며 어머니와 같은 강이다. 백제의 근거지였던 금강이 역사적으로는 패배주의 관점에서 기술되겠지만 길게 보면 패배역사라는 기틀이 오히려 사람들의 삶을 복되게 할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본다. 유순하고 덕성을 가진 것이 최종적인 승리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다른 어떤 강 보다 금강은 우리 배달민족 본래의 모습을 닮은 강이다. 급박하지 않고 순하며 부드럽고 넉넉하다. 나는 이런 금강을 사랑한다.”

작가의 금강사랑은 많은 소설의 배경으로 삼는 것은 물론이고 고향 길 걷기 운동과 같은, 몸으로 직접 체득하기도 한다. 논산에 내려와 집필활동을 하면서 매년 논산시의 특정한 장소를 정해 일주일 혹은 사나흘씩 시민, 독자들과 걷는다. 걸으며 도시락을 함께 먹고 재미있는 퍼포먼스도 진행하며 고향과 함께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간다.

작가는 그것이 작은 애향심의 표현일 뿐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 논리에 젖어 소비중심적인 기억이 전부인 생각의 틀을 땅에 관한 추억으로 변화시키는 일이 필요한데, 그 일에 걷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우리가 걷지 않으니 삶의 정체성도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기억이나 추억이 빠르게, 혹은 생산성이 높아지는 수치개념을 쫓는 일로 변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역할은 그 수치를 높이는 게 목표다. 정치나 국가 전략 차원에서 우리 삶의 정체성을 회복해 주리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한다. 생산성 제고가 행복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교훈으로 보아왔다. 지역, 세대, 도시와 농촌의 격차 역시 국가보다는 문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우리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 문화 활동에 시민 스스로 참여할 때 그것이 고스란히 자기 자신에게 돌아와 잃어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걷는 일과 같은 문화 운동이 자기성찰과 회귀에, 혹은 우리 자신 최저층에 깔린 의식을 확인하는 모티브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걷는 동안 진행되는 문화 활동이 개인의 정체성 찾기에서 나아가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일에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문화 활동에 많은 시민들이 함께해 주길 바라며 그것이 결국 현재의 부정적인 사회상황을 긍정적인 사회로 변화시키는 작은 출발이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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