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만석·김용문 옹, 전역 후 정착

▲ 지난 18일 충북 증평군 증평읍 최만석(왼쪽)옹 자택에서 육군 37사단 창설 멤버인 최옹과 김용문옹이 20일로 창설 60주년을 맞은 부대 초창기를 회고하고 있다.

80대 두 노병(老兵)이 육군 37사단(사단장 이정근 소장) 부대창설 60주년을 앞두고 감회에 젖었다.

37사단 창설 멤버인 증평읍 최만석(83)옹과 김용문(82)옹은 고향 친구로 이북에서 태어나 월남한 후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다 전역한 뒤 지금까지 증평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살고 있다.

최ㆍ김옹 부모들은 당시 10대 후반 이었던 소중한 지식들을 인민군에 보내지 않으려고 남한으로 월남시켰다.

이들 두 노병은 6·25 한국전쟁이 전개됐던 1950년 12월 평양을 떠나 대한민국으로 월남해 곧바로 경기도 양평에 사령부가 있던 국군 3군단에 입대했고 1·4후퇴 당시에는 경북 의성까지 내려갔다.

김옹은 이산가족 찾기 방송과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수차례 신청했지만 고향에 계신 부모님 생사는 알 수 없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고향인 평양에 부모를 두고 단신 월남해 군인이 된 두 노병은 육군본부 직할 11경비 대대가 해체되면서 함께 차출돼 1955년 5월 20일 강원도 양구에서 예비 사단으로 창설된 37사단에 배치됐다.

김옹은 “37사단은 당시 양구 5사단 옆에 창설됐고, 창설한 지 한달 여 만에 춘천에서 열차를 타고 증평역에 도착했다”고 회고했다.

최옹은 “당시 선발대는 6월 22일 증평으로 먼저 왔고 후발대인 양중호 초대 사단장과 부대원 전원은 7월 12일 증평역에 도착해 부대로 이동했으며, 초대 사단장인 양중호 소장은 사병들에겐 부모처럼 다정다감 했지만 장교들에겐 호랑이처럼 엄격했다”고 기억했다.

김옹은 “증평으로 이전한 부대는 막사가 없어 천막 1개에 1개 중대가 생활했고 선발대로 들어온 공병대가 막사를 짓고 병사들이 이주했다”고 밝혔다.

이들 두 노병은 국방부가 1959년 후방 병력 3천여명을 전방으로 배치할 당시 함께 2사단 17연대로 근무지를 옮겼고, 이후 4년 만에 다시 양구로 돌아왔으며 37사단이 창설됐던 양구에는 당시 2사단이 주둔하고 있었다.

최옹과 김옹은 각각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 2사단에서 전역했고 37사단 창설 멤버로 인연을 맺고 부대가 이전했던 증평에서 함께 정착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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