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떠난 후에도 자손들의 안녕을 바라는 부모 마음은 한결같을 것이다. 지난 설날 가족들이 모인자리에서 어머니는 “내가 죽거들랑 아버지 묘소에 묻지말고 너희들이 사는 데서 가까운 곳을 택해 달라”고 당부하는 것이 아닌가. 이는 아버지 묘가 양지바른 소위 명당에 자리잡고는 있지만 산꼭대기에 위치해 성묘나 벌초 등의 관리가 불편함에 따른 것으로 어머니만이라도 자손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겠다는 뜨거운 자식사랑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최근 들어 화장률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이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묘지의 증가요인을 줄여나가고 화장과 납골을 권장하도록 한 장사등에관한법령의 개정을 들 수 있다. 즉 시한부 매장제도와 묘지면적의 축소, 불법묘지에 대한 이장명령 등인데 특히 시한부 매장제도는 적법한 절차에 의해 매장을 해도 15년(최장 60년) 후에는 화장을 해서 납골하도록 의무화돼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매장을 하면 후손들이 시신을 꺼내어 화장한 후 납골을 해야하는 번거로움을 겪게 된다. 필자는 경험이 없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바쁜 세상을 살아가는 후손들에게 커다란 짐이 될 것임은 뻔한 일이다.

여기서 잠깐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성서에 의하면 사람은 흙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은 흙으로 된 겉옷을 벗어버리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죽음을 두려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신을 무섭게 생각하고 기피함에 따라 그 시신을 처리하는 모든 장묘시설도 기피시설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죽음을 흙으로 된 옷을 벗고 영원한 평화의 나라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결코 두려운 것이 아니요, 장묘시설도 기피시설이 아니다. 망자의 영원한 안식처이며 나도 언젠가는 가야할 곳이다.

죽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봄으로써 장묘시설이 결코 혐오시설이 아니라는 인식을 확고히 함은 물론 내가 죽은 후 화장과 납골을 하도록 후손들에게 멋진 ‘화장유언’을 남긴다면 어떨까.

이규상 / 충북도 경로복지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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