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회는 9일 하루 실종됐다. 이날 하루 ‘정치권의 심장부’가 통째로 멈춰 섰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국회 밖에서는 1만여명의 농민들의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처리 반대시위를 벌이고 있었고 국회에서는 FTA 비준 동의안 처리를 놓고 기명, 무기명 투표방식을 놓고 고성이 오가는 등 국회안팎이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국가적 현안이자 대외 신인도에 직결된 FTA 비준 동의안과 한·미동맹의 중요한 갈림길이랄 수 있는 이라크 추가 파병 동의안 처리가 또다시 무산됨으로써 우리 정치권의 총체적 리더십은 무소신과 무기력으로 심각한 장애를 일으켰다.

이날 정부가 제출한 이라크 추가 파병 동의안이 국회 국방위를 통과했으나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본회의 처리를 반대해 안건이 아예 상정조차 못하는 기현상이 빚어졌으며, FTA 비준 동의안 처리를 시도했으나 여야 지도부의 안일한 대응에다 이에 결사 반대하는 농촌 출신 의원들의 덫에 걸려 통과에 실패했다.

한편 한나라당이 줄기차게 제무덤을 파고 ‘서청원 일병 구하기’라는 비아냥거림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이날 불법자금 수수혐의로 구속된 서청원 전 대표에 대한 석방요구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국회의원이 회기 전에 체포 또는 구금됐을 경우 현행범이 아닌 한 국회의 요구가 있으면 회기 중 석방하도록’ 돼 있는 헌법 44조2항의 규정에 따라 이날 국회의 석방결의안 통과되자 서 전대표는 구속 12일만에 석방됐다.

검찰은 이날 오전 국회의 석방 동의안 의결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상황에서 서 전 대표에 대한 석방 동의안이 가결되자 “상당히 유감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안대희 중수부장은 “과연 이것이 사회적인 정의에 부합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고 검찰의 불편한 심기를 반영한 듯 다음달 2일 임시국회가 끝나는 대로 다음날 서 의원을 재 수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날 한·칠레 비준 동의안 심의에 착수한 국회 본회의의 쟁점은 농촌 출신 의원들이 요구하는 기명투표 수용 여부였다. 국회 다수당인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공개 투표를 할 경우 일부 농민단체 및 시민단체의 표적이 되는 것을 우려하는 도시 출신 의원들까지 FTA 반대에 가세할 것을 우려해 ‘무기명 자유투표’를 주장했으나 본회의 표결 결과 기명투표 방법이 채택됐다.

그러나 각 당 지도부가 “이대로 가면 FTA 동의안이 부결된다”고 오판, 표결을 포기함으로써 본회의가 자동 유회되자 의원들의 동향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즉흥적인 판단으로 대외신인도를 또 다시 땅에 떨어뜨렸다는 비난에 이어 자성론까지 일고 있다.

국외로 눈을 돌려보면, 미국과 호주가 지난 8일 FTA 체결에 합의하고, 인도 태국 등 아시아 7개국도 자유무역지대 결성에 서명하는 등 국가 간의 FTA 체결이 가속화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이 농민들의 보호의지가 없어서 FTA 체결에 나선 것은 아닐 것이다.

정부가 한·칠레 FTA에 따른 농민 피해 보상과 농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10년 간 119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지만 한국이 칠레와의 FTA 비준무산으로 칠레에서 한국산 자동차와 가전제품의 점유율이 떨어졌고, 수출 차질액만도 265억원에 달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안이 됐다.

대한민국의 국회가 무소신과 무기력으로 총체적 리더십이 멈춰선 그 시각, 자위대 선발대 파병을 막 시작한 일본의 일장기(日章旗)가 이라크 사막 캠프에 휘날리는 (피가 거꾸로 솟지만) 것이 오늘날 변화하는 세계정세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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