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오공의 활약으로 잘 알려져 있는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원숭이의 왕이 돼 원숭이 왕국을 다스리는데 그 일도 지겨워서 심심풀이로 부처님을 골탕먹이려고 부처님과 힘 자랑하는 얘기가 나온다.

힘 자랑하자는 손오공에게 부처님이 제안하기를 “내 손아귀를 벗어나면 네가 이기는 것으로 하마”라고 말하니까 “그거야 쉽죠”라고 하면서 손오공은 권두운(拳頭雲)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한참 날아 오른 뒤에 주위 어디를 살펴봐도 부처님은 보이지 않고, 다만 멀리 구름 속에 봉우리가 다섯인 큰 산이 보이는지라 손오공은 그중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 자신이 다녀갔다는 징표로 큼지막하게 X자 표시를 하고 유유히 땅으로 내려왔다.

궤변에 앞서 고백이 바람직

그리고 부처님께 자랑하기를 “하늘 위를 한없이 날아갔더니 구름 속에 아주 높고 큰 오봉산(五峰山)이 있길래 그 중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 X표시를 하고 왔다”고 했다. 손오공의 말을 듣고 난 뒤에 부처님이 손바닥을 내 보이시며 “네가 표시한 것이 이 것이냐”고 물었다. 손오공이 부처님 가운데 손가락을 보니, 거기엔 자기가 표시한 X자 표시가 있었다.

손오공이 한없이 하늘을 날아올랐어도 결국은 부처님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힘 자랑에서 부처님께 진 손오공은 그 벌로 천년동안 바위 속에 갇혀 있다가 서역으로 불경을 찾아 나선 삼장법사를 만나서야 바위 감옥에서 풀려나게 된다. 상대방은 다 알고 있는데 어떤 꼼수로 상대방을 속이려 하거나 뻔한 통수로 어떤 일을 얼버무리고 감추려고 할 때, 우리는 흔히 손오공의 이런 어리석음과 경망, 자만에 빗대어 “오봉산 아래서 놀고 있네”라거나 “부처님 손아귀에서 놀고 있네”라고 한다.

세모가 며칠 안 남은 요즘, 예년보다 더 썰렁하고 추운 겨울이 되고 있는 것은 자꾸 희망과 기대의 싹을 잘라버리는 정치권의 혼란스러움과 매번 국민들의 가슴만 철렁하게 하는 대통령의 적절하지 못한 언행 때문이다.

정치 자금에 대해서 검찰이 밝히든 않든 식견 있는 국민들은 이미 다 예견하고 있을 지금, 청와대나 여·야 정당 등이 제각기 얼버무리기 아전인수식 궤변으로 한껏 이 연말을 장식하고 있다.

검찰이야 누구 말 맞다나 법대로 원칙대로 수사해 나가면 그만이지만, 그 동안 검찰 측의 조사보다는 특검을 통해서야 소상하게 밝혀졌던 여러 사실들 때문에 국민들의 따가운 의혹의 시선을 받는 것이 부담돼서 괴로울 테고, 액수야 차이가 있겠지만 합법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모자라는 선거자금을 받아썼던 정치권은 서로 “똥이 더 묻었네 덜 묻었네” 하면서 삿대질하고 있지만 국민들 입장에서는 ‘그 놈이 그 놈’이고 ‘소똥이든 개똥이든 똥 묻은 놈들은 모두 다 같다’는 생각인데도 자기들은 아니라는 게 딱한 일이다.

얼마 전 김수한 추기경이 대통령과 정치권을 향해 했던 쓴 소리의 의미를 이들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선자금문제는 관련된 분들이 감옥 갈 각오로 진지한 고백성사를 해야 한다.”

고백성사는 하느님께 용서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다시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뜻으로 진실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이왕에 대선 자금이 드러난 만큼 이 문제를 모두 털고 이제는 청산을 해야 한다.

잔꾀로 국민들 속일 수 없어

“이제 해당되는 분들은 하느님께 하는 것처럼 정말 진지하고 진실된 고백성사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감옥 갈 각오로 맑은 나라 바른 나라를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라는 김수한 추기경의 말씀의 의미를 애써 외면하는 대통령도 딱하고, 여·야 정치인들도 딱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잘못된 정치판도를 바꾼다는 명분으로 취임 후 일년 내내 온 나라를 휘젓고 있는 대통령의 좌충우돌식 언행도, 여당이라는 곳의 행태도, 신선하기는 커녕 그 나물에 그 밥 같고 결국은 내년 4월 총선 승리를 위한 꼼수일 뿐이라는 것을 국민들은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뻔한 통수로 자기들 자리 보전과 세 확장에 여념이 없는 정치 리더들의 행태를 보는 국민들의 눈에는 부처 앞에서 제 힘 자랑했던 보잘것없는 손오공의 어리석음을 보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정말로 요즘 우리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은 오봉산 아래서 놀고 있는 원숭이와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박규홍 / 서원대학 수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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