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를 스쳐 가는 바람이 싸늘해 완연한 겨울을 느끼게 한다. 싸늘하다 못해 가끔은 매서울 정도로 차갑게 다가오기도 한다.

아마도 이 것은 내 삶의 시간이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마음의 여유가 있는 것은 맑은 공기와 희망이 보이는 나의 주변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내 꿈이 이 곳 학교에서 활짝 펼쳐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는 가운데 오늘의 교육을 생각해 본다.

다른 나라에서는 대수로운 일이 아니겠지만 우리에게는 가히 ‘민족대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대학수능시험이 끝났다.

도대체 시험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온 나라가 함께 숨을 죽여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제 곧 수능시험 성적표를 받아들면 그게 무슨 운명의 계시라도 되는 듯 그 숫자의 높낮이에 따라 제가끔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의 길로 하릴없이 발걸음들을 옮길 것이다.

단 한 번 밖에 없는 인생을 별것 아닌것을 가지고 이처럼 슬프게 자기 인생의 희극을 연출하는 사회가 또한 어디 있을까 의심스럽고 걱정스럽다. 더욱 더 안타까운 것은 올해도 수능시험이 끝나기가 무섭게 목숨을 끊는 학생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희생되어야 우리 교육이 바로 설 것인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우리 교육제도는 바뀌어 왔으나 지금 또 교육은 ‘개혁 중’이다. 글로벌 시대에 뒤떨어진 교육제도와 갈팡질팡하는 정책 때문에 우리 학생들이 희생되어 가고 있다.

한번의 수능시험으로 인생을 좌우한다는 것은 역시 문제다. 공부 잘 해 좋은 학교에 들어가야만 모든 것이 해결되는 듯한 현실에서 아이들이 겪어야 할 고통을 생각해보았는지.

초등학교 4학년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간 이승복이라는 청년의 방송 내용을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그는 공학도로서 세계의 봉사 현장을 두루 다니며 고통받는 자들을 위해 나눔의 소중함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라 했다. 꾸준한 봉사 활동으로 학교성적은 좋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는 서슴없이 “어려서부터 부모님은 솔직하고, 정직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것을 우선으로 하라”고 했으며 성적에 대해 한번도 이야기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봉사에 열심이었으며 그 일을 통해 감사와 기쁨을 맛보았고 사람들과 협력하는 관계도 배우게 되었단다.

또 의사인 아버지와 이민을 떠난 데서 학교 성적은 거의 꼴찌였다. 그런 그가 환경운동가로 세계의 이목을 끌 수 있었던 건 성적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어머니도 환경운동을 함께 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우리 현실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봉사나 환경운동에만 열의를 보인다면 사회의 평가는 어떠했겠는가.

한국출판연구소의 보고서를 보면 초등학교 때 월 10권이던 독서양은 중학생 때 절반 이하로 줄어들고 고교 3학년이 되면 월 1권 정도로 떨어진다고 한다. 일본 전역의 고등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침 독서 운동은 청소년을 책으로 유인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과 그 성과를 잘 보여주고 있다. 독서를 통해 인성을 키우는 일이나 미래에 대한 도전과 희망조차 허용되지 않는 우리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자신의 삶에 다른 더 중요한 의미와 가치와 과정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수능 결과로 자신의 가치 등급을 부여받게 되는 압박감과 절망감이 얼마나 심했으면 소중한 생명까지 던져야 했겠는가. 이들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다. 더 이상 시험 점수로 어린 생명들이 삶을 포기하고 절망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우리 미래를 짊어지고 갈 청소년들에게는 넓은 세계가 있고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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