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모습을 보면 그 사회의 노인의 지위를 알 수 있다. 전통사회에서 우리의 노인은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고쳐쓰지 않을 정도로 품위와 예를 지켜왔다. 장마비에 곡식이 떠내려가도 글 읽던 일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그 정도로 자신의 지위에 맞는 품행을 하려고 애썼고 노인으로서의 체면을 유지해 왔다는 뜻이다.

9월 21일이 치매의 날이었고, 10월 2일이 노인의 날인데 오늘날의 우리 노인은 ‘체면이 밥을 먹여주느냐’고 할 정도로 예전의 품위를 지킬 자존심이 뭉개져 버렸다. 서울의 탑골 공원을 비롯해 청주의 중앙공원 등의 노인 무료급식 현장 어디에서나 나타나는 노인의 끝없는 기다림과 무질서는 우리사회의 부정적인 노인문화상을 실감케하여 안타깝기 그지없다.

‘늙음’이라고 하는 것은 ‘젊음’의 반대말이다. 젊은 사람은 ‘젊은이’라 하고, 늙은 사람은 ‘늙은이’라 칭한다. 그런데 ‘젊은이’라는 말속엔 부정적인 느낌이 없는데 ‘늙은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것을 초월해 차별적인 용어로 생각된다.

게다가 늙고, 병들고, 돈까지 없으니 현대 사회를 이끌어 가는 젊은이가 노인을 우대하지 않고 학대하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데 가장 핵심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 논리이고, 따라서 투자가치가 있는 사람만이 젊고, 건강하고, 돈이 있으면 최고로 우대받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진입하려는 오늘날 노인의 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빈곤, 질병, 역할상실, 고독, 학대 등의 문제가 위험수위에 달했다. 특히, 후기 고령자의 증가로 대두되는 치매노인 환자의 증가는 단순히 노인문제 만이 아니고, 그 노인을 부양하고 있는 가족의 위기 내지는 파괴까지 이르렀다. 특히 치매환자의 경우 기억력 감퇴 및 상실로 인해 자기관리 능력이 상실되어 많은 문제 행동을 낳게 된다.

치매환자는 과거의 기억은 너무나 생생한데 가장 최근의 기억을 하지 못하여 일상생활에서 억지소리를 하게 되면서부터 갈등을 빚는 경우가 많다. 오래된 과거의 기억은 영화 속의 필름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데 금방 일어났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해가 될 리가 없다.

치매환자 가족이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환자를 책망하게 되고, 본의 아니게 윽박지르고, 더욱 심해지면 묶어두고, 가두어 두는 학대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1930년 이전 출생의 노인의 평균 수학연수가 3년일 정도로 근대식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살아왔다. 교육은 물론 자기자신을 위한 취미나 여가활동을 즐길 만큼 경제적인 여유도 없는 가난과 고난의 생활을 영위해 왔다.

요즘 젊은이 같으면 살아남을 자 얼마나 있을까 생각될 정도로 생이 질겨 지금까지 살아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힘들게 살아온 어르신들이다. 당신들의 생은 고달팠지만 자식을 위해 헌신한 분들이다.

지금까지 고생만 해온 노인들이 노후를 편안하게 대접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런데 학대라니 왠말인가. 우리의 경로(敬老) 사상이 경로 (輕老)풍토가 되어서야 말이 되겠는가. 치매노인의 인권침해로부터 보호되고 노후에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치매환자의 장애등급화를 위한 서명운동을 서둘러야 할 때가 되었다. 내부모 더 나아가 본인의 일이기도 한 것이다.
(krhan@cjnc.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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