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사람들에게서 인생의 좌우명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스스럼없이 손해보며 사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하고 무슨 좌우명이 그러냐며 되묻는 경우가 많다. 사실 현대사회의 각박함 속에 살아 가면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삶의 명제임에는 분명하다.

이런 가치관을 갖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건강상의 이유로 월악산의 어느 조그만 암자에 기거한 일이 있다. 얼마간 그 곳에 머물면서 세상사에 대한 생각을 접어 둔 채 자연인으로 인생에 대한 단순한 고민을 늘어놓고 있었다.

하루의 생활은 지극히 단순해 산과 물 그리고 하늘을 벗삼아 보내며 새로운 기운들로 채워나가고 있었다. 마지막날 저녁 산사의 주인을 찾아 작별의 인사를 하기 위해 다도의 시간을 갖게 됐다.

여기서 스님은 낯선 도시인에게 안타까운 시선을 보이면서 욕심과 초조함에 쌓인 모습이 다른 현대인과 마찬가지여서 이 것들이 몸과 마음에 가득히 찬노라고 말하시면서 버리는 것만이 얻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현재 어지러운 사회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조금씩 손해보는 것이라고 덧붙이셨다.
이는 조금 양보하면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는 의미와 함께 자기 스스로 바람을 적게 하여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가볍게 하는 것 이였다.

사실 양보의 필요성은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이였지만 여기에 손해를 본다는 말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진정한 의미는 희생을 통한 사랑의 실천이며 이 것이 곧 사회공동체에서 우리 모두 함께 살 수 있는 대안이었던 것이다.

사실 지금 우리는 너무 집단 이기주의와 함께 자기 목소리만 내세우고 있다.정치권은 정치권대로 노동자는 노동자대로 심지어 교육의 장인 대학에서도 교수와 학생 그리고 직원까지 서로 뒤섞여 아전투구의 양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도무지 원칙과 질서가 없음은 물론이고 순수함을 잃은 채 도덕성의 결여로 이어져 사회의 존립기반까지 흔들리고 있다. 여기에 최고통치권자까지도 행동보다는 목소리만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어 송하노인의 예언처럼 우리민족에게는 최대의 시련에 직면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총체적 난마 속에 얽혀있는 분열의 양상은 한 두 사람의 지도자에 의해서보다는 국민개개인의 의식전환만이 가능하며 이 것이 바로 서로의 생각과 주장을 누그러뜨리고 참고 뒤로 물러서는 자세가 필요한 때이다.
곧 서로가 조금씩 손해를 본다는 마음가짐으로 우리 사회 전체를 먼저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이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좌우명을 손해보는 삶으로 함께 공유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jhwang@chungb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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