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면 만물이 기지개를 켜고 1년을 시작하는 것처럼, 모든 학생들은 새로운 학년 또는 학교, 새로운 교실,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친구 등 모든 새로운 환경에 접하게 된다.
배가 아파 학교가기 싫다는 아이들도 있고, 갑자기 몸의 여러가지 퇴행적 증상이 나타나기도 할 만큼 새로운 환경에의 적응이 3월의 가장 큰 숙제이다. 또한 중학교나 고등학교신입생이 되어 진학할 때 사실 두렵다. 예나 지금이나 새로 신입생들이 들어오면 선배들 입장에선 기선제압이 필요할 지도 모르지만, 신입생들은 적응에 신경써야 할 일 도 많은데 겁나고 두렵지 않을 수 없다.
몇 년 전, 그것도 아마 3월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생이던 조카가 학교에서 약간의 사고를 친 것이다. 얼굴은 온통 상처투성이고 셔츠의 단추는 떨어져나갔고 아랫배가 아프다면서 산달 다가오는 임산부 걸음걸이를 하고 왔다.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같은 반 친구녀석과 심하게 투닥거리며 싸운 모양이다. 별 것 아닌 일로 시작한 싸움이었다지만 1년을 같이 지낼 같은 반 친구들 앞에서 ‘라이브 쇼’를 한 셈이니 체면이 말도 아닐 것이다.
“에 그것이 개가 이겼다고 봐야죠” 졌다고 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이긴 것도 아니겠다 싶어서 웃고 말았지만, 그래도 안되겠다 싶어서 이 녀석에게 약간의 잔소리를 해댔다.
첫째, 싸우지 말아라. 아무리 싸우고 싶은 일이 있어도 말로만 해라. 둘째도 싸우지 말아라. 말로도 안되면, 싸우고 싶은 것을 참아라. 셋째, 싸워라. 말도 안되고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는 싸워라. 그 대신 조건이 있다. 반드시 이겨라. 이길 수 없을 때는 아예 싸움을 시작하지도 말아라. 이 녀석이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후로는 별로 기억에 남을 만한 사건은 없었다.
손자병법의 모공편(謀攻篇)에도 이런 내용들이 있다. ‘백 번 싸워서 백 번을 이긴다 하더라도 그것이 최고의 방법은 아니다. 최상의 방법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일이다.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것은, 외교적인 교섭으로 상대의 뜻을 꺾는 일이다.
또한 상대의 동맹관계를 분산시켜 고립시키는 일이다. 희생이 요구되는, 성곽의 공격따위는 최하의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병력이 열세면 후퇴하고, 승산이 서지 않으면 싸움을 피해야 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절대로 패할 리 없다.
그러므로 백 번을 싸워서 백 번을 다 이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아니요, 싸우지 않고 적군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지금 생각하면 좀 우스운 얘기지만, 전학을 많이 다녀 본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전학을 가거나 학년이 바뀌면 반에서 가장 앞장서는 녀석이 꼭 있다. 학교가 파할 쯤이면 어디어디로 나오라는 통지가 온다.
미리 치밀하게 작전을 짜고 마음의 준비를 해 둔다면 이런 일은 한 번쯤 통과해야 하는, 두렵지만 기억에 남는 행사 정도로 지나갈 수 있다. 그 행사를 무사히 치르고 나면 다른 아이들에게 가방을 맡기고 우쭐한 기분으로 같이 어깨동무를 하고서 학교를 나설 수 있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너무 겁을 먹은 나머지, 그 행사를 망치는 경우에는 다른 녀석들의 가방까지 대신 들어줘야 하는 우울한 처지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세계는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어른들이 일으키는 전쟁으로 인해 아이들이 고통을 받고 있고, 강대국의 압력에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 싸우는 시늉을 해야하는 나라들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파병에 관해 논란이 있지만, 어떤 형태로든 우리도 이미 싸우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싸움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현명하게 피하는 방법을 찾는 것도 싸움의 한 형태이다. 지금 새 학년을 맞는 학생들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일상사는 모두 싸움의 연속이다. 마음 속에선 두려움에 떨면서도 좋은 방법은 보이지 않고 반드시 돌파는 해야만 하는 그런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피 흘리지 않고 가슴 아프게 하지 않는 싸움의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굳이 최선책이 아나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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