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이전에는 듣도 보도 못한 각종 분야와 전문가들이 생겼고 앞으로 더욱 세분된 분야의 전문가들이 생겨날 것이다. 물론 각 분야의 전문가가 괜히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세상 어떤 미물이라도 존재의 이유가 없는 것이 없고, 인과관계가 세상 만물의 이치라는 설명을 통하지 않고라도 이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고대에는 세분해 전문가를 따로 둘 정도로 일의 규모가 크지도, 복잡하지도 않았지만 현대 사회는 날이 갈수록 세분되고 복잡다난해지고 있으며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일을 다 잘 하기에는 여러모로 불가능에 가깝다.
여러 분야의 일을 두루 잘 하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이는 전문적인 깊이는 한계에 부딪혀 얕은 흉내만 낼 뿐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각 분야의 전문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로 경계가 없다 할 정도로 전공 무시, 전문가 무시하고 인맥에 의한 일 처리가 다반사이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와 해야 할 일을 구분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이기에 대형 사고가 많고 반복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얼마 전 공예비엔날레 참여 업체 선정 심사위원의 면면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경계 없는 풍토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어 씁쓸함을 금치 못했다.
업체 선정은 이해 관계에 따라 잡음이 생길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이치임에도 이를 눈깜짝하지 않고 관에 우호적인 지역 인사들로 겉 모양새만 갖춰 나가는 이 같은 사례들이 자주 발견되고 있어 실로 비관적이다.
관의 입맛에 맞는 위원들의 선정 관행은 공정성의 상실과 부정의 시발이다. 해당 분야 전문가를 선정해 자문과 심사를 맡기기 보다 실질적 전문가의 숫자 맞추기에 불과한 행태가 여전함은 안하무인격인 행정이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됨은 결국 예산 낭비와 내용의 부실로 이어져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런 일들로 인해 사회에 대한, 관에 대한 불신이 점점 더 커져가고 국민들은 좌절과 절망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정치권과 관을 믿지 않게 된 지 오래다. 관에서 하는 일들이 대개 전문가를 합리적으로 등용하지 않고 인맥에 의해, 이해타산에 의해 이뤄지다 보니 불신만 쌓이게 된 것이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 전문가를 양성하고, 청소년들은 전문가가 되기를 원한다.
그런데 사회가 불합리한 인사가 다반사이다 보니 인맥이 없으면 노력해봐야 소용없다는 절망감과 좌절로 미리 포기하고, 노력보다는 소위 ‘줄’을 찾아 헤매는 현상들이 비일비재하다.
물론 세상 누구든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누군들 눈 앞의 이익에 객관적일 수 있으며 자기 주변을 챙기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팔을 안으로 굽힐 때와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각 분야마다의 경계를 살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별하며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아무데나 전문가라고 하며 낯내기에 익숙한 사람들에 대한 혹독한 비평이 선행되어야 관의 행태도 바뀔 것이다.
누구든 이해할 수 있고 납득할 수 있는 인재 등용과 합리적인 운영만이 우리 사회를 보다 투명하고 보다 더 발전하게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관에서 먼저 앞장서서 이끌어야 한다.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해 눈 앞의 이익에 흔들리지 않고 합리적인 상식이 통하는 투명한 사회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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