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성큼 다가왔다. 백설같이 고운 함박눈이라도 펑펑 내려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어둠을 밝히는 크리스마스트리 장식과 손잡고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 연인들의 웃음에 따사로움이 마음 가득히 들어선다.
돌이켜보면 올 한해는 어려움도 많았다. 하나된 민족임을 느끼며 나누었던 월드컵의 기쁨을 비웃기라도 하듯, 북한과의 서해 교전은 남북 관계 및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정치권 및 검찰, 그리고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각종 비리와 스캔들 또한 국민들의 마음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난데없는 부동산 투기도 서민들의 주름과 한숨을 늘여 놓았으며, 하늘마저 무심한 듯, 티끌하나 묻지 않은 여중생들의 죽음은 약소민족의 아픔까지 더해주었다. 참으로 억울하고, 힘들고, 아파서, 생각하기조차 망설여지는 아픈 기억들이다.
스위스 같은 선진국가의 국민들은 행복해 보이기만 하던데, 가난한 이웃들의 추운 겨울나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골프를 치기 위해 해외로 놀러 나가는 사람이 늘어만 간다던데, 나는 이 나라에서 이웃을 사랑하며,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야만 하는가 하는 자괴지심도 든다.
하지만 자신의 죽음조차 인류에 대한 사랑과 희생 다음 자리에 놓았던 예수님의 숭고한 사랑을 생각하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나와 같이 피를 나누고, 숨쉬고, 함께 살아가는 우리 이웃, 우리 민족의 행복 없이 어떻게 나의 행복이 충족될 수 있겠는가. 권력이나 재산, 쾌락 등에 대한 이기적인 욕망은 그 끝이 없고, 때로는 남을 해하기도 하며, 결국에는 자신마저 희생물로 삼는 반면, 사랑의 결과는 아름답고 영원하지 않았던가.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함께 한다면 이까짓 혼란과 어려움이야 이겨내지 못할 까닭이 없다. 우리 민족은 남(彼我)이 우리(我)의 운명을 좌지우지했던 일제 강점기도 버텨냈고, 현대사를 얼룩지게 했던 독재자들의 정치적 탄압은 물론, 석유 파동과 IMF 등 혹독한 경제적 시련도 이겨낸 민족이 아니던가. 태풍 피해자에 대한 성금 모으기와 자원 봉사의 소중한 기억이 있고, 촛불을 켜들고 미래를 밝히려는 우리 아이들의 눈빛이 있으며, 사랑하는 이웃과 겨레가 있는데, 예서 좌절할 수는 없다.
성탄절을 맞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백도웅 총무께서는 절망을 품고 사는 가난한 동네에 성탄의 기쁨과 희망이 솟아나게 하고, 시름에 젖은 농민에게, 낯선 땅에서 상처받고 고통 당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과 위로가 전해지게 하고, 남북 분단의 가시밭에,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을 희망하는 온 국민의 가슴에, 전쟁과 폭력으로 신음하는 곳에 평화의 임금 예수가 태어나게 하자고 하셨다. 한 울타리에서 같은 숨을 쉬며 살면서도 나 자신의 이익을 더 중시했던 이기적인 심성을 깨우쳐주시는 말씀이다.
조계종 총무원장인 정대 스님께서도 “다양한 가치와 신념이 충돌하면서 수많은 생명이 죽어가고 있는 지금과 같은 때야말로 예수님의 사랑과 평화의 정신이 더욱 절실하다”며 예수님 오신 날을 축하하는 메세지를 전하셨다. 게다가 이번 크리스마스날에는 대통령 당선자 및 낙선자가 함께 신·구교 화합 성탄음악회에 참석하여 예수님의 사랑을 기리신다고 한다.
우리도 성탄절을 맞아 부족함과 이기심에 젖어 웅크려있지 말고 가까운 이의 손을 잡고 이웃 속으로, 겨레 속으로 나가 사랑과 희생을 몸소 실천하신,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신, 예수님의 사랑을 마음 가득히 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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