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하도 어수선하다 보니 웬만한 일은 세인의 관심을 끌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언론사 세무조사와 고발사건을 둘러싼 공방의 목소리가 워낙 큰 데다 정치인과 문인, 학자와 정치인, 문인대 문인, 교수와 교수간의 신문기고 논전 등등. 가히 ‘만인대 만인의 투쟁’ 양상이 빚어지고 있고 여기에다 가뭄에 이은 수해상황이 겹치다보니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의미있는 일’들이 그대로 묻혀버리고 있는 것이다.

서민들의 삶의 과정에서 특징적으로 출현하고 있는 ‘애환(哀歡)의 징표들’이 ‘시국적 정보홍수’에 떠밀려 흔적 없이 사라졌거나 소멸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그 상징적 사례(事例)로 경북 상주시의 ‘의로운 소(義牛)’이야기를 들고자 한다. 이 달 9일자 문화일보 보도에 따르면 경북 상주시 사벌면 묵상리 임봉선(67) 할머니가 지난 92년 구입, 사육 중인 암소 ‘누렁이’(13년생·375㎏)는 외양간을 찾아와 자신에게 먹이를 주며 쓰다듬는 등 무언의 대화를 나누며 친구처럼 지내오던 이웃집 김보배(당시 83세) 할머니가 94년 5월23일 숨지자 삼우제날 외양간을 뛰쳐나와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6㎞ 거리의 김할머니 묘소를 찾아가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모습이 주민들에게 목격됐다는 것. 이 소는 이날 주인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면서 제발로 김할머니의 빈소에 들름으로써 유족들을 감동시켰다고 주민들은 전하고 있다.

이와는 좀 다르게 전한 중앙일보(7월 10일자 40판 25면)에 의하면 당해 소는 1994년 5월 옛주인이었던 김보배씨(당시 85세·여)가 세상을 뜨자 여물을 먹지 않았는가 하면 사흘 뒤엔 집에서 4㎞ 떨어진 김씨의 묘소까지 혼자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었다는 것이다. 김보배 할머니가 이 암소의 ‘주인’이었나, 아니면 단순한 ‘이웃’이었냐의 차이만 있을 뿐 두 신문의 암소보
도 내용은 ‘의로운 소(義牛)’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에 감동한 묵상리의 주민들은 이듬해 마을회관 앞에 1.5m 높이의 ‘숭의우공비(崇義牛公碑)’를 세워 소의 의행(義行)를 기리고 있다.

그리고 김할머니의 손자 서동영씨(47·조경업·상주시 남성동)와 건설업자 정하록씨(49·상주시 연원동), 동물관련 민속사료 연구가 우영부씨(55·경기도 고양시) 등이 이 암소의 도축을 막기 위해 소값으로 200만원을 소유주인 임할머니에 주고 소를 공동소유화 했다. 이 같은 소식이 널리 퍼지자 우성사료 상주대리점은 매월 90㎏의 배합사료를, 상주축산업협동조합은 매월 100㎏의 조사료를 소가 자연사할 때까지 무상지원하기로 했고 상주시는 “후대사람들이 충성하는 소의 마음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시에서 “의우총(義牛塚)을 만들겠다”는 방침이 보도되고 있다.

설화로 전해져 내려오는 ‘주인 구한 의로운 개(義犬)’이야기처럼 동물의 사람 관련 가화(佳話)는 약간의 ‘인위적인 과장’ 가능성을 전적으로 부인할 수 없다 하겠으나 상주의 ‘의로운 소’ 사례는 (허위로 조작했다는 증거가 없는 한) 마을주민들의 전언에 신빙성이 있고 상주시까지 이를 인정하는 바이어서 ‘꾸며낸 이야기’는 아닌 것으로 믿고 싶다.

우리가 ‘상주의우’ 이야기를 전해 듣고 감동을 받으며 직설적으로 토해지는 일성은 “사람보다 낫다”는 말이다. 소보다도 못한 인간들이 너무 많아 우공(牛公)앞에서 사람들이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본시 ‘우직한게 소‘라고 하지만 자신에게 정을 주고 ‘사랑의 사육’을 아끼지 않은 사람에게 정의(情義)와 정의(情誼)를 눈물겹게 나타낸 암소의 행위가, 요즘 너무나 소중한 인간정서의 ‘상실자들’을 무언으로 꾸짖고 있다 할 것이다.

오늘을 살고 있는 타산적 인간들이 잃어버렸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는 ‘소중한 인간정서’는 참으로 많아 모두 열거하기 어렵지만 그 대표적인 것으로 감사, 은혜, 의리, 우정, 염치, 봉사, 공경, 희생, 사랑, 용서 등을 들 수 있을 터이다. ‘제 몸’밖에 모르는 이기적 인간들은 오늘이 있기까지 자기를 키워주웠거나 댓가없이 지원해 준 사람의 은혜와 사랑을 망각한채 도리어 해코지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감사함을 모른 채 ‘은혜를 원수로 갚는 통탄할 세태’가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현상은 도처에서 만발하고 있다. 부모와 자식간의 패륜, 부부간 패덕(敗德), 직장과 정치권 인간들의 배신, 사제간의 윤리 소멸, 친구간의 배반, 유권자를 배신하는 선출공직자의 비리 및 직무유기 등이 끝간 데를 모르고 날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하겠다.

언필칭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이 ‘의로운 소나 개’만도 못한 행위를 일상적으로 자행하고 있는 세상이어서 상주 ‘암소 누렁이’의 의로운 이야기는 더 한층 빛이 나고 감동의 여운이 가셔지지 않고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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