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후한 말기에 위 왕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한중(漢中)으로 출정했다. 익주(지금의 사천성)를 차지하고 한중으로 진출하여 한중 왕인 유비(劉備)를 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유비의 군사(軍師)였던 제갈량은 계책을 세워 조조와 정면 대결을 피하고 조조 진영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바람에 조조의 많은 군졸들이 굶어 쓰러지고 도망자가 속출하게 되었다.

낭패를 당한 조조는 어느 날 전군에게 ‘계륵(鷄肋)’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모두 계륵이라는 명령이 무엇을 뜻하는 지 모르고 어리둥절해 하는데 주부 벼슬의 양수(楊修)라는 자가 서둘러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대통령, 민주당을 계륵 취급

한 장수가 그 연유를 묻자 양수는 “닭갈비는 먹자니 별로 먹을 게 없고, 버리자니 갈비 사이에 붙은 고기가 아까운 것이요. 그런데 지금 전하께서는 한중 땅을 닭갈비 같은 땅으로 생각하고 갈비에 붙은 고기를 버리기로 하고 철군을 결심하신 것이오”라고 답했다. 과연 며칠 후 조조는 한중 땅으로부터 전군을 철수시켰다.

여기서 계륵의 고사를 떠올리는 이유는 소위 집권여당이라고 하던 민주당이 6개월을 티격태격하더니만 분당 사태로 가면서, 노 대통령이 민주당을 소위 계륵으로 본 것이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대통령 측의 입장에서 버리자니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 지지 기반을 잃을 것 같아서 아깝고, 취하자니 한나라당 지지기반을 이길 수 없으며, 더군다나 대통령 말도 잘 안 듣는 사람이 많아서 국정 운영에 걸림돌이 될 것 같으니 말이다.

그 동안의 노 대통령의 말처럼 진정으로 지역구도를 타파하고 새로운 정치의 틀을 짜려고 하는 것인지는 현재로선 어느 누구도 알 수가 없다. 대통령의 말속에는 언제나 해석하기 나름의 아리송한 구석이 한 두 군데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조가 계륵이라고 했듯이 차라리 “정치개혁을 위해서 민주당은 해체되어야 한다”고 선언을 한다면 대통령이나 신당이 오히려 국민들에게서 더 많은 지지를 얻을 지도 모르는데도 대통령은 아직도 보통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로 사태를 계속 얼버무리는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의 그런 말투는 그래서 대통령의 어떤 언급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딴지를 걸면 말을 잘못 알아들어서 그렇다는 등, 아니면 진의를 왜곡한다는 등의 해명으로 상대방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국민들을 헷갈리게 하기도 한다.

위나라의 양수(楊修)같은 사람이 아니면 대통령의 말의 진의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거나 아니면 측근들의 통역성 해명을 들어야 이해가 될 판이다.

국민, 투박 진솔한 일을 기대

또, 조조의 ‘계륵’이라는 말에는 그래도 나름대로의 심중을 살필 수 있는 구석이라도 있지만 요즘의 우리 대통령의 말에는 막 말을 하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그 심중을 헤아리기 어려운 곳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취임 초의 화려한 말의 성찬에서, 대통령의 격의 없는 행동에서, 그리고 무언가 새로운 정치 패턴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에서, 정치발전과 더불어 우리나라가 21세기의 동북아 중심국가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한껏 부풀었지만, 이제는 아무도 그런 기대를 갖지 않고 있다.

소위 ‘개코’라 불리는 개혁코드에 맞는 사람들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대통령이 민주당을 장악하여 정치적 소득을 취할 수 없다면 차라리 조조의 계륵 계책을 택하여 떳떳이 새 출발을 하는 것이 오늘의 국정의 난맥상을 추스르는 현명한 방법일 지도 모른다.

국민들은 달변인 변호사 출신 대통령의 화려한 수사보다는, 투박하지만 진솔하고 계륵이라는 말처럼 절제되면서 나라를 살릴 수 있는 무게 있는 말을 더 듣고 싶어한다. 교언영색은 시민의식이 성숙한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원대 수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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