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직장 그만둘래.” 주변에 폭탄선언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 그래? 수입 짭짤하지, 안정적이지. 어디 이런 직장 흔한 줄 알아?” 애정 어린 직장 동료라면 이런 반응이기 십상이다. 아내는? “그럼 뭘 먹고살아요? 집세는 어떡하고, 만약에 사업이 잘 안되면 어떡해요? 만약에…”

그렇다. 갑자기 직장을 그만 둔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코끼리와 나뭇가지’`와 `‘게 잡는 어부’`의 일화를 통해 보면 발상의 전환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어부들은 바구니에 뚜껑을 덮고 게가 기어들어 올 수 있을 정도로만 구멍을 뚫고는, 한 두 마리가 들어오면 뚜껑을 열어 놓는다.

그런데도 바구니 안이 넘쳐 나도록 나가는 게는 한 마리도 없다. 심지어 바구니를 탈출하려는 동료가 있으면 발목을 잡기까지 한다. 이 이야기는 두 말할 나위 없이 현대 직장인들도 그들처럼 서로의 발목을 잡으며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려는 것이다. 세상이 활짝 열려 있고, 직장을 박차고 나갈 힘이 있음에도 ‘`만약에’`라는 두려움 때문에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모양이 게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코끼리와 나뭇가지`’ 역시 이와 비슷한 교훈을 담고 있다.

인도에서는 코끼리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어렸을 때부터 커다란 나무에 묶어놓는다.

이때 코끼리는 이른바 후천적인 무력감을 습득하게 된다. 달아나려고 애를 써 보지만 매번 실패하면서 결국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몸무게가 수 톤에 달하는 어른이 된 뒤에도 코끼리는 도망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자신의 몸집보다 훨씬 작은 나무에 묶여 있더라도 나뭇가지 하나 움직여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여기서도 ‘직장인’은 ‘코끼리’에, ‘나뭇가지’는 ‘변신을 가로막는 두려움’에 각각 해당된다.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보잘 것 없는 장애에 벌벌 떨면서 자신을 가두고 있는 울타리를 박차고 나가지 못하는 것이 커다란 코끼리가 약간만 힘을 써도 툭 부러질 수밖에 없는 허약한 나뭇가지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모양새와 영락없이 닮은 꼴이다.

못마땅하기 짝이 없는 현실을 타개하지 못하는 원인은 세 경우 모두 자신에 있다. 게가 바구니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바구니 때문이 아니라 게 자신 때문이고, 코끼리가 나무에 묶여 맥을 못추는 이유도 나무가 강고해서가 아니라 코끼리가 힘을 쓸 엄두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람 역시 현실에 짓눌려 있는 것은 누구의 강요 때문이 아니고 자신이 용기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변화의 시작은 당연히 자신에서 비롯된다. 만족할 수 없는 현실을 타개하고 성공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두려움에 짓눌린 자신부터 변화시켜야 한다.

전구를 발명한 에디슨은 수천 번 실패할 때마다 전구를 만들 수 없는 수천 가지 방법을 발견한 셈이다.

이 시대의 많은 직장인들의 처지가 인도 코끼리의 운명이나 다를 바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과 의지가 있으므로 코끼리와는 전혀 다른 존재이다. 그러므로 `‘코끼리와 나뭇가지`’가 시사하는 운명의 굴레가 인간에게는 더 클 수도 작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불가능할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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