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학문의 전당이라 할 수 있다. 대학의 시초는 유럽에서 찾을 수 있다. 유럽 대부분의 대학은 거의 300여 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보다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대학들도 많다. 본인의 모교인 인스부르크대학교만 해도 333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까지 4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을 배출하였다. 그 중 3명은 화학상이었으며, 1명은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모두 기초학문을 한 과학자들이었다. 노벨상은 기술자나 발명가에게 주어지는 상이 아니다. 그리고 기초학문은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기초학문 바로서야 나라발전-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대학들은 모두 기초학문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공학, 농학, 약학, 음악 등의 학문은 종합대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이들 분야의 학문들은 독립된 다른 학교에서 이루어진다. 사범대학이니, 간호대학이니, 혹은 음악대학이니 하는 학교는 종합대학교 내에는 없다. 그런 대학들은 기초학문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의 대학들은 모두 학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학과가 없는 대신 그 속에 수많은 연구소들이 있다. 그리고 각 교수들은 자신의 전공분야에 해당하는 연구소에 소속되어 가르치고 연구한다. 학생들은 어느 분야의 학문을 해도 되지만, 학위를 얻기 위해서는, 자기가 좋아하고 적성에 맞는 학문을 하는 교수를 꼭 찾아가 학위 과정생이 되어야 한다. 이 때 만약 방사화학을 하겠다면, 방사화학연구소의 교수를 지도교수로 하는 것이다. 물론 방사화학의 분야도 다양하기 때문에, 어느 특정 분야를 전공하는 교수를 선택해야 한다. 노벨상은 모두 기초학문에게만 주어진다. 우리 나라 의과대학의 경우, 대부분의 학생들이 돈이 되는 임상 분야를 선택하지만, 노벨상을 수상하는 의학자들은 모두 기초의학을 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유럽 대학의 연구소들은, 우리 나라 대학 연구소들처럼 이름 뿐인 것이 아니고, 재정적으로 독립되어 있으며 학문적으로 전혀 자유로운 것이다.
오늘 우리 대학들은 두 가지 이념에 의해서 고통받고 있다. 그 하나가 학부제이며, 다른 하나가 신지식이다. 오래 전부터 실시해 오는 학부제는, 대학에서 학과의 개념을 없애고, 유사한 내용의 학문들을 하나로 묶어서 운영한다는 것이다. 신입생들은 일 년 동안 학문이 유사한 군으로 소속되어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2 학년이 될 때 자기가 원하는 학과에 간다는 것이다. 일 년 동안 학문을 하는 동안에,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발견하게 되고, 그런 다음 적성에 맞는 전공 분야를 찾아간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아무 잘못이 없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현실로 보면 매우 잘못된 것이다. 소위 인기 학과에만 학생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이것을 막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학과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대학의 현행 학부제는 비정상적인 것이다. 더구나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서는, 이른바 신지식이라는 생소한 개념의 이론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것은 지식을 돈이 되는 상품처럼 여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인간이 경제적 동물이기 때문에, 지식도 인간의 생활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는 것이다.

-장래 보장되는 연구소 ·국가기관 필요-

지식에는 새로운 것도 없으며 헌 것도 없다. 지식은 평등하며, 한결같고, 자유로우며, 또한 잘못된 것이 없다. 잘못된 지식은 지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문학적 지식이나, 사회학적 지식, 혹은 자연과학의 지식은 모두 가치가 있으며 평등한 것이다. 그런데 만약 돈이 되는 지식만 중요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중요치 않다면, 학문의 전체적인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만약 지식을 시장 원리에 의하여 평가하고 발전시키려 한다면, 기초학문은 파괴되고 소멸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가치와 영혼에 관한 학문일수록 기초학문이며, 돈이 안 되는 것이다. 사실이지, 역사, 철학, 문학, 수학, 물리, 화학, 그리고 생물학같은 학문들은 직접 돈이 되는 학문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학문 없이 다른 학문이 발전할 수는 없다. 지금 대학은, 학부제와 신지식이라는 개념들에 의하여 방황하고 있다. 이와 같은 개념들이 대학에서 기초학문을 밀어내고 있다. 그러나 기초학문이 불가능한 나라에서 학문의 발전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학문의 발전 없이는 나라의 앞날도 없다. 학부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유럽의 대학들처럼, 대학 내에 많은 명실상부한 연구소가 있어야 하며, 그 연구소에서 해당하는 전공 교수들이 재정적 어려움 없이 연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기초학문을 선택하는 학생들의 장래를 보장해 줄 수 있는 국가 기관이나 연구소가 있어야 한다. 이런 일련의 조치 없이는 학부제도 신지식도 희망이 없다.
/ 충북대교수·시인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