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해방’된지 57 년이 되었다. 필자가 봉산초등학교 2 학년이던 때에, ‘해방’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함께 즐거워하고, 일본군으로 끌려가 전쟁을 하던 동네사람들이 살아서 돌아오면 그때마다 닭을 잡아 큰 동네 잔치를 하던 동네사람들의 기쁘고, 환했던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러나, ‘8·15 해방’은 지금 아무런 기쁨도 감격도 주지 않는다. ‘해방’도 많이 늙어서, 벌써 57 살 환갑이 다 되었다. 사람 같으면 큰 일을 하고 손자들을 볼 나이다. 우리 민족은 57 년 전에 ‘해방’을 맞이하였으나, 민족의 통일은 물론 하나의 국가라는 이념의 정치적 실체를 얻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그것은 우리 민족 지도자들의 갈등과, ‘해방’을 가져다 준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초강대국 간의 이해의 상충으로, 상승작용을 하면서, 비극적으로 끝났다. 민족 지도자들은, 미국과 소련이라는 이념의 노예가 되어, 조국의 통일보다는, 자신들의 정치적 힘과 세력을 통하여 권력을 잡는 데만 몰두함으로써, 남쪽과 북쪽에 각각 이념이 다른 국가가 탄생하는데 공헌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리하여 남쪽엔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하는 자본주의 국가가, 북쪽엔 김일성을 신처럼 받드는 공산중의 국사사 각기 독립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민족의 비극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직도, 우리 민족은 통일된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해방’된지 5 년이 채 안 되어 동족상잔의 6·25전쟁이 발발함으로써, 우리 민족은 같은 형제끼리 서로 싸우고 죽이는 처참한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킴으로써, 조국의 산하는 전쟁의 불길에 휩싸였고, 그 결과는 아무 것도 없었다. 6·25동란의 특징은, 민주진영과 공산권 국가들이 서로 남쪽과 북쪽의 나라를 도와 싸웠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이 전쟁을 통하여 얻은 유엔군측 인명 피해는 33만 명, 공산군측 사상자는 180만 명에 달하였고, 전비는 150억 달러였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아직도 남쪽과 북쪽은 휴전이라는 불안정한 정치적 장치를 통하여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북쪽은 그 동안 수많은 도발만을 자행하였다. 아웅산 사건, 판문점 도끼 만행, KAL기 폭파, 푸에불로호 납치, 무장 간첩 남파, 서해안 교란 등, 그 파괴공작은 헤아릴 수 없다.

신뢰구축하자면서 신뢰를 무너뜨리고, 민족공조하자면서, 공조를 파기한 것은 언제나 남한이 아니라 북한이었다. 그러나 남한은 그렇지 않았다. 북한을 포용하고,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신뢰구축과 평화공존의 이념을 실천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조국의 통일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었다.

‘해방’이 되면서 가장 무서운 대립은 이데올로기에 있었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혹은 자본주의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것이 민족과 국가를 분열시켰다.

나는 개인적으로 오스트리아의 경우를 거울로 삼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스트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신탁통치안을 받아 들여 오늘날의 통일된 국가를 가지게 되었다. 신탁통치 기간이 끝난 다음, 소련과 그 밖의 미국 진영 국가들이, 오스트리아를 모두 떠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나라는 그것을 반대하였다.

독일은 통일되기 전에도 서독에서 동독의 책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책을 통하여 문화와 역사를 배우고 과학적 지식을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민족의 동질성과 통일을 가능하게 하였다.

통일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신뢰의 구축이다. 믿음, 진실이 없는 조약이나 협상은 휴지와 같은 것이다.

북한이 지난 25 일 서해도발과 관련하여 ‘유감’을 표명하였다 하여 그것을 우리 정부는 ‘사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유감’은 ‘사과’가 아니다. ‘유감’의 사전적 의미는, “느끼는 바가 있다”던가, 혹은 “마음에 남아 있는 섭섭한 느낌이다”.

그러므로 북한의 ‘유감’은,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는 ‘유감’의 반대 편에 있을 수도 있다. 더구나 북한은, 전화통지문에서 서해교전을 ‘우발적으로 발생한 무력충돌’이라 규정하고, ‘북남쌍방’이 앞으로 이런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어이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정부는 ‘북측의 명백한 사과와 유감표명’이라며, 북쪽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오는 9 월 ‘부산아시안게임’에는 어쩌면 ‘인공기’가 휘날릴 수도 있게 되었다. 조국의 통일은 일방적인 퍼붓기나 편애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국가는 이성적 존재가 아니다.

북쪽엔 엄연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있고, 남쪽엔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남북갈등’에 더 하여 ‘남남갈등’이 고개를 든다면, 그것은 평화공존뿐만 아니라, 조국의 통일도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통일은 어느 정부의 독점물이 될 수 없다. 독일의 통일은 서독의 경제력과 군사력의 우위에서 가능하였다.

이것 없이는 국가의 존립마저 불가능하다. ‘57 살의 해방’이
아직도 식물인간처럼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안따까운 일이다. 환갑이 될 때, ‘조국통일’이라는 큰 선물을 ‘61 살의 해방’이 조국에 바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 충북대 교수·시인·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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