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가족, 뉴질랜드 가다 <8>

숲속 아침을 깨우는 산새들의 지저귐이 잔잔한 파도에 실려 멀리 수평선을 향하면 태양은 방긋 고개를 내밀어 오포노니 사람들을 깨운다.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한 사람들은 석양이 물들 때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너무나 바쁘게 바깥일에 몰두하는 우리의 삶과는 사뭇 다르다. 어둠이 내리면 가게들마저 문을 닫고 가족의 품에 안긴다. 숲과 바다 그리고 세상과 하나 된 가족은 뉴질랜드 사회를 지탱하는 원동력이자 근간인 듯하다.

뉴질랜드 숲을 대표하는 나무는 카우리(Kauri Pine)다. 수천 년 동안 물속에서도 썩지 않는다는 카우리는 내구성이 강해 선박·가구 등의 재료로 무분별하게 벌목돼 숲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벌목을 금지하고 보호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카우리 보호구역인 와이포우아(Waipoua Forest) 숲에 접어들었다.

이 숲에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타네 마우타 카우리(Tane Mahuta Giant Kauri)가 있다. 수령은 약 2천년, 주 기둥 높이 17.7m, 총 높이 51.5m, 둘레 13.8m, 나뭇가지의 둘레 244.5m로 ‘숲의 제왕(Lord of the Forest)’이라 불리운다.

마오리 신화에 의하면 타네는 하늘의 아버지인 랑기우니(Rangiuni)와 땅의 어머니인 파파투아누쿠(Papatuanuku)의 사이에서 태어났고, 어려서 부모의 품을 벗어나 숲을 창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 숲에서 발견된 모든 생물들은 타네의 자식이라 일컫는다. 그 위용 앞에서는 누구라도 압도당할 수 밖에 없다. 절로 탄성이 나온다.

숲의 제왕을 만나러 가는 길에 ‘카우리는 약한 뿌리를 통해 영양분을 흡수하기 때문에 밟으면 상처를 입어 질병에 걸릴 수 있으니 산책로만 이용하라’는 안내판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 산책로 저 너머에 거대한 카우리 나무가 보인다. 주위에 있는 한 아름도 넘는 카우리들이 왜소해 보인다. 윤지와 형빈이가 든든한 기둥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며 ‘숲의 제왕 타네 마우타 카우리’를 배경삼아 셔터를 눌러 본다. 나의 카메라 앵글로는 그 자태를 제대로 표현해 낼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타네 마우타 카우리와 이별하고 숲의 트레킹코스로 갔다. 코스는 50분이 소요되는 테 마우타 나헤르(Te Matua Ngahere) 트렉과 1시간 20분 소요되는 야카스(Yakas) 트렉이 있다. 이곳에는 밖에서 유해 세균이나 이물질을 묻히고 들어와 숲과 카우리 나무에 피해를 입힐까 염려하여 입구에서 철저히 소독을 하고 들어가게 되어 있다.

우리는 테 마우타 나헤르 트렉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네 자매 카우리(Four Sister Kauri)를 만났다. 거대한 기둥 4개가 함께 하늘로 나란히 뻗어있다. 의좋은 자매처럼 서로의 영양분을 나눠 정갈하게 하늘을 향해있다. 이곳을 지나 카우리와 함께 숲을 지키는 다양한 식생들의 향기에 취해 길을 걸으면 테 마우타 나헤르(Te Matua Ngahere Kauri)가 나온다.

이 숲에서 두 번째로 큰 테 마우타 나헤르는 ‘숲의 어머니’로 주 기둥 16.41m, 전체 높이 29.9m, 기둥 둘레 10.21m, 나무줄기의 둘레 208.1m이다. 유모차를 끌고 산책 온 아이 엄마, 가족들과 함께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흐른다. 우리 가족 또한 숲속의 공기를 느끼려 깊은 숨을 내쉰다. 숲에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길은 객토를 했거나 나무를 깔아서 만들었다. 또 데크로 만든 구간에는 작은 나무 하나라도 함부로 건드리지 않으려 하고, 돌출된 나무 바닥에 홈을 파서 자연의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려 애쓴 흔적이 느껴졌다.

와이포우아 숲은 카우리 가족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이곳을 걸으며 가족이 함께 나누고 호흡을 하며 큰 숲을 만들어 가야 하는가를 느끼게 하였다. 다가빌(Dargaville)에 도착을 했다. 다가빌은 1872년 조셉 다가빌이 개척한 도시로 카우리 목재의 수출항으로 번성했으나 카우리 나무의 벌목이 금지되면서 뉴질랜드 농가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변모하였다.

아이로와강(Wairoa River) 하구에 나지막하게 펼쳐진 다가빌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전원도시였다. 이곳에서 환전을 하고 점심 식사를 했다. 특히 그들의 친절함엔 배울 점이 참 많았다. 처음에 들어간 식당에서 맘에 드는 요리가 없어 피쉬 앤 칩스(Fish&Chips) 요리하는 곳을 물어보자 본인들 가게도 정신없이 바쁜데 영어를 잘 못 알아듣는 우리를 위해 그 가게까지 함께 걸어가 줬다. 다가빌 박물관(Dargaville Kauri Museum)은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위치하고 있었다. 박물관 밖에는 환경보호단체인 그린피스의 범선 ‘무지개 전사(Rainbow Warrior)’에 설치했던 거대한 배의 닻을 전시해 놓았다. 박물관에서는 와이로아 강(Wairoa River)과 어우러지는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다가빌(Dargaville)부터 마타코헤(Matakohe)까지는 고속도로이다. 길게 쭉 뻗은 도로가 모처럼 질주의 충동을 느끼게 한다. 질주를 멈추고 잠깐 휴식을 취하는데 아내가 손짓을 한다. “이 곳에서 양털 깎는 것을 직접 볼 수 있다”며 빨리 오란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양 털을 깎느라 한창 바쁘다. 한 마리 양의 털을 깎을 때마다 힘들어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양털 깍는 모습을 처음 보는 아이들과 아내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다.

20살 청년 베이던이 털을 깎으면 맥스(8살)와 제이슨(6살)은 품질에 따라 털을 분리한다. 베이던은 “천천히 깎으면 한 시간에 12마리의 양을 깎는데 한 마리당 2달러의 임금을 받고”고 한다. 그의 조수인 “맥스와 제이슨은 ‘한 시간에 2달러씩을 받는다”고 한다. 잠깐의 휴식에다 입장료를 내고 보는 곳이 아닌 일반 농장에서의 양털 깎는 모습까지 보게 됐으니 오늘 또한 행운이다. 고속도로를 달린다. 옆으로 스위스의 마테호른처럼 생긴 마운가라호(Maungaraho, 221m)산이 스쳐지나간다. 마타코헤 카우리 박물관(Matakohe Kauri Musseum)에 도착을 했다. 5시에 문을 닫는데 4시 20분에 도착했으니 입장료를 반만 받겠다고 한다. 박물관에 들어서니 규모가 대단하다.

카우리 나무와 관계된 역사가 모두 들어있다. 그 거대한 나무를 벌목하고 제품을 만드는 과정부터 생활상까지 망라하고 있다. 어쩌면 뉴질랜드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22.5m에 이르는 거대한 카우리 목재는 카우리 나무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글·사진 박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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