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로 접어든 네팔은 역시 세계에서 손가락에 뽑힌다는 거리의 매연과 하루 에도 몇 차례씩 쏟아지는 비로 인해 습하고 무더워서 이방에서 온 여행객에게는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현지에 살고 있는 네팔인 들은 숨이 턱 막히는 거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유유히 지나다니고 있다. 히말라야 산악을 등에 기대고 살아가는 산악국가의 피폐한 삶이 날것으로 그대로 눈에 들어온다. 힌두교와 불교가 혼재한 나라이며 살아있는 여신까지 두고 있는 이 나라는 온갖 것들에게도 신성을 부여해 신으로 모시고 있다.

그녀를 만난 것은 카트만두 거리의 한국식당 축제 앞에서였다.

무더위에 지쳐 보이는 그녀는 다짜고짜 내게 한국말로 길을 묻는다. 근처에 큰 광장이 있다는데 길을 못 찾아 벌써 두 시간째 헤매고 있단다. 그녀가 찾는 광장은 조금 뒤 우리 일행들이 찾아갈 쿠마리 사원 광장이다. 나는 그녀에게 우리와 동행 할 것을 제의했지만, 나 혼자 여행하는 것이 아닌 것을 안 그녀는 편치 않은지 극구 사양하며 다시 길을 찾아 봐야겠다고 한다. 경기도에서 왔다는 그녀는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그날로 떠나 왔단다. 포카라에서 부터 시작한 네팔에서의 생활이 벌써 두 달째란다.

무엇이 그녀를 이방의 도시로 내 몬 것일까? 나 또한 혼자 여행이었다면 아마도 그 연유와 가슴속에 담긴 깊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을 수도 있었겠지만, 일행들과 함께 움직여야 하기에 짧게 그녀와 헤어졌다. 뿌연 매연의 거리 속으로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걱정 어린 눈길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때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연극이 있다. ‘엄마는 마흔에 바다를 보았다’라는 연극이다. 어느 날 엄마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무작정 집을 나서 바다를 보러 간다는 내용이다. 바다라는 상징은 엄마의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엄마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여자로서 길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가족 속에선 여자라는 진정성은 없고 오로지 엄마라는 희생의 기능인이었던 그녀들의 이야기다.

칸트만두 거리에서 만난 그녀 또한 세파의 먼지를 훌훌 털고 양팔을 풍차처럼 흔들며 펄럭이는 옷자락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는지도 모른다.

네팔의 자전거 택시인 릭샤를 타고 일행은 쿠마리 사원으로 이동을 했다. 초경전의 예닐곱 어린 여자아이를 신으로 모시고 있는 쿠마리 사원은 규모가 무척 크다. 광장 또한 사원을 방문한 사람들로 혼잡하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자칫하면 일행을 잃어버릴 수도 있어 한눈을 팔수가 없다. 쿠마리 여신이 나타나는 시간은 한정적이라 눈여겨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때, 누군가 내 팔을 잡으며 반갑게 아는 체를 한다. 두시간전 축제 식당 앞에서 만났던 그녀였다. 릭샤를 타고서도 족히 20여분이 걸린 거리를 그녀는 용케 걸어서 잘 찾아 왔다.

오랜 여행지에서의 생활 때문인지 얼굴에 피로는 누적되어 보이지만, 그러나 눈 속 검은 눈동자는 어느 누구보다도 자신감 있게 빛나 보였다. 그때 쿠마리 여신이 사원 창문 사이로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녀 또한 내 시야에서 사라진 것도 그 순간이었다. 그녀만의 진정한 바다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서 왔다는 그녀는 지금도 네팔 어느 곳을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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