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눈썹 같은 달이 서서히 살이 올라 둥글게 환해지면 집안의 할머니, 어머니의 몸들도 설날이후 다시 분주해져 부엌과 광들을 오가며 바빠지기 시작했다.

지난 여름과 가을에 산과 들에서 채취해 삶아 말려 두었던 묵나물들도 무쇠 솥으로 들어가 다시 한 번 삶아지고 들기름에 볶아져 먹음직스럽게 밥상 위를 장식했다.

정식 보름이 아닌 전날인 개 보름날에는 내 어린 날 산골에서는 9번의 나무를 해서 지게로 나르고 밥 또한 9번 먹는다는 구전을 따라서 실천에 옮기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횟수를 다 채우지 못하고 하루를 보냈고, 서 너 시경 저녁밥들을 일찍 먹은 사내아이들이 우유깡통에 소나무 관솔불을 지펴 벼 밑둥치만 있는 논에서 쥐불놀이를 하며 새떼들처럼 몰려 다녔다.

환한 저녁나절에 출발한 쥐불놀이가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하는 시간은 하늘에 별들이 하나둘 콕콕 박히며 주위가 어둠으로 점령되고 부터였다.

큰 타원형의 불꽃 소용돌이들이 어둠속에서 여기저기 주홍색 불씨들을 뿌리며 일제히 군무를 시작하면 괜히 내 마음도 그 불길의 꼬리를 길게 잡고 출렁이며 심하게 요동을 쳤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그 산골이 대낮처럼 환해지는 것은 밤하늘의 달이 마을 앞산 위에 떠오를 때 쯤이었다.

계집아이들은 큰 양푼 하나를 들고 집집마다 부엌에 도둑괭이들처럼 스며 들어 무쇠 솥 속 밥들을 슬쩍해서 다함께 양푼 밥을 비벼 먹기도 했다.

양념이 어디에 있고 김치와 나물들을 제어미들이 어디에 두었는지 생쥐들 마냥 잘도 찾아내어  친구들에게 일러 주곤 했다.

그 어린 범죄자들은 영악하게도 소리가 나지 않게 부엌문에 사내동생들을 시켜 오줌을 누게 하는 치밀함도 잊지 않았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일부러 우리의 할머니나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헛걸음칠 것을 염려해 여분의 밥을 한 그릇 더 해 솥 안에 넣어 놓았다고 했다.

그 아름다운 배려인 고봉밥 한 그릇이 우리에게 나눔이 어떤 것 이라는 것을 일찍부터 따뜻한 행동으로 보여 주셨던 것이다.

마을에 있던 샤먼에게 한해 집안의 운세와 식구들의 액운을 알아보는 것도 정월을 시작으로 정월대보름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샤먼을 찾는 어머니를 따라가 치마폭을 잡고 있던 우리에게 그 해 조심해야 할 것들을 조목 조목 계절에 따라 어머니는 참 세세하게도 다시 일러 주시곤 했지만, 우리 남매들이 그 어머니 우려의 말을 잘 따르고 실천을 했는지는 거의 기억 속에 없다.

대보름날이 되면 사랑방에서 액막이연을 아버지가 우리들에게 하나씩 만들어 주셨다.

연을 날리다 줄을 끊고 날려 보내면 연이 온갖 나쁜 것들을 다 싣고 멀리 날아간다고 하기에 우리들은 기를 쓰고 연을 날리다 줄을 끊어 하늘 높이 날려 보냈다. 마을 앞동산은 이렇게 우리들의 연을 날리는 장소이기도 했지만 환한 보름달이 두둥실 떠올라 온 마을을 비추면 할머니와 어머니들은 가장 고운 옷들을 너나 할 것 없이 차려 입고 동산위에 올라 보름달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기도들을 하시곤 했다.

그녀들의 기도는 한동안 오래도록 그칠 줄을 몰랐다.

하나같이 한그루 나무들처럼 어떠한 미동도 없는 숭고한 그림들이었다.

올해도 새롭게 맞이한 정월 대보름달은 하늘 위에 떴다.

달이 품은 영성 속에 한해의 소망을 책갈피 끼우듯 슬쩍 끼워 본다.

헌정 이래 첫 여성 대통령이 운행할 배가 막 출항을 시작했다. 동산에 올라 달에게 소원한 또 다른 염원 하나는 그 수장이 맡은 5년의 나라 살림을 별무리 없이 잘 수행하며 공약을 충실하게 이행해 달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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