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 태종 이세민(왼쪽) 중국 서안의 장안성 유적.

고양공주와 변기의 스캔들은 장안에 급속도로 퍼졌다. 어사대로부터 이 사건을 보고 받은 태종은 불같이 노했다. 변기를 즉각 요참에 처하도록 칙명을 내렸다.

요참이란 죄인을 커다란 도마 같은 판자 위에 올려놓고 허리를 동강내어 처형하는 참혹한 극형이다.

만인에게 본을 보이고, 죄인에게는 더 없는 굴욕감을 주기위해 공개처형이 원칙이었다. 30세도 되기 전에 고승으로 숭앙을 받던 변기는 이처럼 어이없는 사건으로 인해 장안성밖 저자거리에서 처참하게 죽었다.

변기를 이처럼 잔인하게 처형한 것은 태종의 불교에 대한 혐오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당시 불교는 대중적이지 못했다, 일부 지식 계급의 종교일 뿐이었다. 공식 석상에서도 도교가 우선이고 불교는 그 다음이었다. 태종은 위험을 무릅쓰고 천축국 등 서역을 다녀 온 현장에 대해서는 호기심과 경외감을 갖고 그의 경전 번역작업을 지원했지만, 불교에 대한 근본 인식이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변기에 이어 고양 공주의 노비 수십명도 목이 잘렸다. 공주와 변기의 관계를 알면서도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는 것이 죄명이었다. 다만 공주의 이름이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들에 대한 처형은 감옥 안에서 은밀하게 집행되었다.

고양공주는 애인을 무참하게 죽인 아버지 태종에 대해 원한을 품었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태종은 이 사건 이듬해 51세로 세상을 떠났다.

도둑 맞은 집 주인이 감옥에 간 사건

2001년 3월 경기도 분당 경찰서에 절도 사건이 접수되었다. 단순 절도 사건이다. 도둑을 맞은 집은 국방차관 문모씨(당시 58세, 육사 23기)의 아파트였다. 신고는 부인 김모 씨(당시 54세)가 했다. 집에 있던 현금과 수표, 그리고 미화 1만 달러 등을 도난당했다고 신고한 것이다.

경찰은 신고를 받고 도난당한 수표를 추적해 절도범이 문씨의 운전병이었던 이모(당시 22세) 상병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이모 상병은 훔친 수표로 전자대리점에서 캠코더를 구입했다가 꼬리가 잡혔다. 경찰은 4월 18일 그를 검거해 범행일체를 자백받았다.

문 차관은 평소 운전병이었던 이 상병에게 아파트 열쇠를 복사해 주었는데, 이 상병은 문씨의 부인이 오전이면 지병으로 통원치료를 해 집이 빈다는 사실을 알고 갖고있던 열쇠로 아파트에 들어가 돈을 훔쳐나왔다. 경찰은 현역군인인 이 상병을 군 수사기관에 이첩했고 그는 4월 19일 절도혐의로 구속됐다.

당시(4월 20일) 경찰과 국방부의 발표에 따르면 이 상병은 3월 24일 오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에 있는 문씨의 아파트에 들어가, 베란다에 있던 종이상자와 안방의 007가방에서 미화 1만7천달러와 현금 800만원, 10만원권 수표 70장 등 모두 3천700여만원 상당의 돈을 훔쳤다는 것이다.

집주인 문씨는 전남 강진 출신으로 육군 군수참모부 장비처장과 연합사 군수참모부장, 국방부 획득실장 등 군 생활의 대부분을 군수분야에서 일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국방차관에 중용되었던 그는 사건 직후인 4월 1일 차관인사때 자리에서 물러나 수사가 한창 진행중일 때는 민간인 신분이었다.

그런데 이 상병이 훔친 돈의 성격이 문제가 됐다. 돈이 왜 베란다의 종이상자에 들어있었으며, 부인이 신고한 미화의 액수와 실제 액수가 왜 차이가 나느냐는 것이다.

부인은 도난당한 미화는 1만달러라고 신고했는데, 조사결과 이 상병이 훔친 미화는 모두 1만 6천달러였다. 환율이 높았던 당시 한화로는 약 2천80만원 상당이었다.

문씨는 돈의 출처에 의문이 제기되자, “외국 출장때 쓰라고 친구들이 줬다” “차관활동비 중 남은 것이다”라고 해명했으나 돈을 준 사람이 누구이며, 돈의 성격에 문제가 없었는지에 대해 조사가 진행되었으며 정치적으로도 논란이 되기 시작했다.

결국 검찰의 수사를 통해 문 씨가 국방부 획득실장 재직시절인 1999년 초, 강남의 한 일식당에서 군납중개업자로부터 청탁과 함께 1천만원을 받은 사실이 밝혀지는 등 획득실장, 차관 재직시 2개 군납업체와 군납중개업자 2명으로부터 4천여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이해 2001년 6월 29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뇌물) 등 혐의로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뇌물로 받은 4천여만원에 대해서는 법원에서 같은 액수의 추징금이 선고됐다.

도난당한 사실을 신고하여 범인은 잡았지만, 결국 주인도 감옥에 가고 털린 돈 보다 더 많은 추징금을 내게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정식(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전 CBS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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