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가 있는 인도기행-손의 재발견
②‘새벽의 도시’ 오로빌에서-1

▲ 오로빌 안에 있는 작은 공동체 ‘용기’라는 마을에는 1주일에 한번씩 생선장수 아줌마 마라가 온다. 그녀는 아이들의 학용품을 벌기 위해 생선을 판다. 마라가 사용하는 칼판만 바꾸면 훨씬 빠르게 생선을 다듬어 하루에 더 많은 생선을 팔 텐데. 그것은 내 생각일 뿐이다. 그녀의 느리게 천천히 가는 방법을 배우고 싶을 뿐이다.

한국에서 우연히 인도 남부 타밀나두 주에 있는 오로빌 공동체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미 오래전에 많은 언론매체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공동체였으나 나는 뒤늦게 알게 된 셈이다.

개인의 발전과 진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인류의 일체성 실현을 목표로 한다는 오로빌 공동체는 40개국의 나라에서 모인 2천여명의 오로빌리언(주민)이 광활한 숲속에 큰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는 곳이다. 1968년 오로빌 공동체를 세운 마더 미라 알파사는 이 지구상에 어떤 나라도 영유권을 주장하지 못하는 곳이 어딘가에는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선한 의지와 진지한 열망을 지닌 모든 사람이 세계의 시민으로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곳, 지고의 진리라는 유일한 권위에만 복종해 살 수 있는 그런 곳이 어딘가에는 있어야만 한다며 인도 남부 뜨거운 땅에 ‘새벽의 도시’라는 뜻의 오로빌 공동체를 건설했다.

오로빌이라는 커다란 공동체 안에는 다양한 소규모의 공동체들이 보물처럼 숲속 곳곳에 숨어있다. 각각의 공동체가 추구하는 목표나 삶의 방법도 다양하다. 어느 공동체는 유기농업을 중심으로 하고 있고 어느 공동체는 수공예를, 또 다른 공동체는 공연예술을 주관하고, 청소년들의 교육을, 명상을, 생태적 기술을….

현재의 오로빌은 마더의 꿈에 다가가기 위한 건설 과정에 놓여 있는 셈이다. 언젠가는 그 꿈을 실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 꿈이 실현되지 않더라도 결코 실패한 공동체가 될 수는 없다. 오로빌의 주민들은 완벽한 것을 추구하기 보다는 자연과 상생하고 세계인이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그 과정을 즐기기 때문이다. 자급자족의 문제, 교육 문제, 오로빌 주변 인도 현지인들과의 조화 등 오로빌리언들이 넘어야할 산도 많다. 이상을 향한 여정에 놓여 있는 이 실험도시에 우리가 들어섰다.

 

어딜 가나 현실과 이상 사이에는 괴리가 존재하겠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만큼은 내가 꿈꾸던 공동체와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가보자.

한동안이라도 그 이상적인 마을에 가 살아보자였다. 그래 인도 여행의 첫 기착지를 오로빌 공동체로 정한 것이다.

처음 도착해서는 오로빌 내에 있는 뉴크리에이션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렀다. 저렴한 값이 매력이어서 주저 없이 결정하고 지내보니, 돈의 가치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저렴한데다 다른 나라의 여행자들을 아침마다 만나 차를 마시며 이야기 해볼 수 있고, 개나 고양이, 소가 한 울타리에서 자라고 있으니 오다가다 그것들을 쓰다듬어 주는 재미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런 장점이 있는 반면에 싼 방이 가져다주는 단점들을 열거하면 이렇다.

우기가 막 지난 계절이어서 벽에는 곰팡이가 잔뜩 끼어 있어 방안을 둘러보는 것이 불쾌했고 1층 단독 방갈로 형태의 방은 매일 쓸어내도 개미와 다리가 여럿 달린 벌레들이 수 없이 들어왔고, 문을 열고 있으면 어른 팔뚝만한 큰 뱀이 휙휙 지나가니 언제 우리를 공격할지 몰라 늘 문을 닫고 살아야 하고. 침대는 오래되어 매트가 울퉁불퉁해 누우면 허리가 곧게 펴지지 않아 허리 통증이 재발하고. 방은 불을 켜도 어두워 글을 쓰거나 책을 보는 것이 너무 불편하고. 기타 등등.

이렇게 장점과 단점사이를 오가며 돈의 가치를 재고 무엇이 우리에게 절대적인가를 생각할 때 오히려 테리는 분명했다. 우리가 호화판 생활하자고 인도 온거 아니잖아? 어린 딸이 견딜 만 하다는데 엄마는 왜 못 참아? 부끄러웠지만 편리한 생활에 오랫동안 길들여진 나는 포기가 안 되었다. 결국 한달 반 만에 좀 더 쾌적한 아파트형주택 ‘용기’라는 이름을 가진 공동체로 옮겼다. 숲속 한가운데 있는 집은 한결 쾌적했다. 앞뒤로 창이 넓어 바람도 좋았고 3층이어서 벌레들도 덜 들어왔다.

어쨌든 우리는 집을 옮기고 자연의 풍요로움 속에서 산책도 하고 그림도 보러 다니고, 오로빌의 상징인 마티르 만디르에서 명상도 하고, 프랑스 영화도 보며 오로빌 공동체가 주는 문화적인 혜택들을 누려 보았다. 그사이 테리는 이스라엘인이 운영하는 생태공동체 농장 사다나 프로스트에 2주간 자원 봉사를 다녀왔다.

원두막 같은 움막에서 모기와 함께 잠자며 최소의 물로 샤워하고 하루 5시간씩 40도를 웃도는 땅에서  불가마 짓는 일을 도왔던 테리는 그곳에서의 생활을 오로빌 생활 4개월 중 가장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했다. 이것을 계기로 테리는 각 국에서 온 자원 봉사자들과 친구가 되었고 오로빌의 현실을 몸소 체험하면서 나보다는 오로빌 공동체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간 것처럼 보였다.

 

오로빌에는 해마다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우리처럼 단순한 관심을 갖고 찾아 왔다가 오로빌 주민이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아니 나는 왜 오로빌이었을까. 한국에서의 팍팍한 삶을 견디지 못해서, 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돼 있는 것 같아서, 타인의 잣대나 시선보다 온전한 내 의지만으로 살아보고 싶어서, 여행자처럼 삶을 살아 보고 싶어서. 다 치기어린 사치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견디지 못하고 길을 나섰고 오로빌에 와서 며칠 지내면서 나는 오로빌리언은 될 수 없다고 일찌감치 결론 내렸다.

오로빌의 방식은 내 근성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늘 서두르고 급히 가고 싶어 하고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으면서 하루아침에 뭔가 이뤄지길 기대하는 못된 습성이 고쳐지지 않는 나다.

오로빌은 서둘지 않는다.

오로빌의 가장 큰 문제인 자급자족하는 일도 긴 시간을 두고 진행 중이고 아이들 교육도 환경도 현지인들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도 다 느리게 천천히 가고 있다.

그 많은 문제들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기에 나는 내 현실적인 욕심들이 더 절박하다. 당장 모든 게 갖춰져 있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내게 오로빌의 실험적인 방법을 받아들일 여백이 없는 것이다. 오로빌이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한 역할을 하고 싶거나 일부분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여러 가지 면에서 자격이 없었다. 결국 나는 여행자로 잠시 머물다 떠나겠다는 생각을 일찌감치 굳혔다.

 

용기공동체에는 1주일에 한 번씩 생선장사 아줌마 마라가 온다. 주방시설이 갖춰져 있어 밥을 직접 해먹게 된 우리는 1주일에 한번 오는 마라가 단골이 되었다. 바다가 가까운 오로빌이어서 이른 새벽시장에 나가면 싱싱한 생선을 사다 먹을 수 있었지만 게으른 나는 늘 오고 가는 교통비와 시간과 더위와, 이런 것들을 핑계로 바구니에 몇 마리 안 되는 생선을 들고 다니는 마라에 의존한다.

생선 담을 냄비를 들고 마당으로 나선다. 마라가 생선 다듬는 손이 보인다. 그녀의 느린 동작을 보면서 생선이 언제 다 다듬어져 프라이팬에 올려 질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모래 바닥 위에 생선 다듬는 칼판을 놓고 발가락으로 그 칼판을 고정시킨 다음 손으로 생선을 잡고 칼날에 대고 비늘을 벗겨낸다. 그러다 손이 미끄러우면 바닥 모래에 손을 쓱 한번씩 문지른다.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로 아가미나 지느러미를 쳐 내는 것이 아니고 발가락에 껴 있는 톱니바퀴 칼날에 대고 오려 내는 것이다. 칼날이 잘 안 드는지 오려내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찢고 있는 기분이 들 정도다. 손으로 생선을 다듬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생선을 다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 마리 생선이 다 날아가고 반 토막만 남는다.

신기하게도 인도 어디를 가나 가정집에서 생선을 다듬는 방법이 같다. 왜 저렇게 불편하고 더딘 방법으로 생선을 다듬지. 답답한 것은 나 하나였다. 생선이 다 다듬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나 생선을 다듬는 마라나, 급할 것이 없다. 그것이 인도고, 오로빌이다.

마라는 매일 새벽마다 근교 도시인 폰디체리 수산시장에 가서 생선을 사온다. 오늘은 이 마을 내일은 저 마을, 한바구니 생선이 다 팔릴 때까지 생선 다듬는 칼과 생선바구니를 이고 다니는 것이다. 생선을 다듬는 칼만 바꿔도 손을 매번 모래바닥에 닦지 않아도 되고 시간이 엄청 절약될 텐데. 내 생각일 뿐이다. 인도인들이 수십년, 혹은 수 백년 해 왔을 일이다.

집으로 가져온 생선에 잔뜩 묻은 모래를 씻어내는 데만 한나절이 걸린다. 생선살에 모래가 박혀 제대로 씻지 않으면 모래와 함께 생선살을 먹어야 한다.

언젠가부터 그 모래를 견딜 수 없어 생선을 통째로 사다 직접 다듬었다. 손에 생선의 피를 묻히고 생선 머리를 칼로 척척 쳐내고. 이것이 뭐 새삼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보니 내가 참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에 너무 길들여져 있었다. 그래도 마라는 저 손과 저 생선 칼판으로 아이들 학교에 가져갈 학용품을 사 대고 우유를 사고 밀가루를 산단다. 느리게 천천히 하는 일이지만 그녀의 가족, 그녀가 감당할 삶의 한 부분을 생선을 다듬는 손과 함께 온몸을 다해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느린 손앞에 부끄러울 뿐이다. 내 근본이 달라지지 않는 이상 이렇게 느리게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섞여 하나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꿈을 꾼다. 나도 오로빌처럼, 마라처럼 저렇게 온몸을 다해 느리게 살고 싶다고.

글·사진=김정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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