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정아와 재닛 쿡 -

지난 4월 중순, 나주 배꽃·유채꽃 전국사진촬영대회에 가 보았다. 처음 가본 사진 촬영대회다.

하얀 배꽃 사이로 예쁜 한복을 입은 앳된 얼굴의 모델이 지도위원인 사진작가가 요청하는 포즈를 수줍게 취하면 대회 참석자들이 저마다 카메라 셔터를 바쁘게 눌러댄다. 한참 후, 모델을 위해 잠시 쉬는 시간이 있었다.

지도위원이 모델에게 ‘어느 학교 학생이냐?’고 물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마 모델이 학생인줄 이미 아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 가까이에 있다가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두 사람은 나이 차이가 아버지와 딸뻘쯤 된다.

모델은 어느 대학 무용과 1학년 학생이라고 했다.

지도위원이 말하길 “너는 얼굴이 곱살스러우니 공부 잘해서 상품(上品)이 되거라. 상품이 되면 취직도 좋은데 할 수 있고 시집도 잘간다. 상품이 돼야 사람들이 너를 무시하지 않고 존중해 주는 거야”라고 했다.

동네 아저씨가 동네 처녀에게 해 주는 덕담이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신정아 생각이 났다. 신정아가 써낸 책(제목: 4001) 때문에 정운찬 전 총리가 곤욕을 치르는 등 한참 시끌시끌 할 때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신정아는 한때 상품(上品)이었다. 아니 상품 정도가 아니라 대단한 명품(名品)으로 대접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성이라도 미국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면 어디가나 대단하게 본다. 더구나 여성 아닌가.

예일대 박사라니까 모두 그녀를 귀하게 여기고 존중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그 박사학위가 진짜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녀의 주가는 곤두박질을 치게 되었다.

2007년 당시 신정아의 학력문제로 떠들썩할 때 유명 연예인 등 여러 사람들이 학력을 정직하게 말하지 않은 죄로 곤욕을 치렀다. 당사자들에게 그 후유증은 길고 깊을 수 밖에 없다. 유명인이 아니라면 문제될 것이 없을지 모른다. 적당히 숨기고 사는 사람들도 많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이름이 알려지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것이 바로 유명세라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이름이 알려지면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공적인 인물이 된다. 공적인 인물은 그만큼의 책임이 따를 수 밖에 없다.

신정아의 경우는 대형 스캔들로 불리기에 여러모로 구색이 잘 맞았다. 장관급 애인(변양균)까지 두었으니 말할 것도 없다. 유명세에 징벌적인 의미가 더해졌다. 징역살이를 한 이유이다.

30년 전 퓰리처 상을 받은 직후 언론계에서 추방된 미국 워싱턴 포스트의 여기자 재닛 쿡(Janet Cooke) 생각이 났다.

재닛 쿡은 글 재주가 비상한 장래가 촉망되는 기자였다. 1980년 9월 어느 날 그녀가 쓴 ‘지미의 세계’란 놀랄만한 기사 한편이 워싱턴 포스트 1면에 실렸는데, 내용은 8살된 지미란 이름의 헤로인에 중독된 어린 소년의 일상에 관한 심층 기사였다.

기사는 이 어린이가 헤로인에 중독된지 벌써 3년째 되었으며, 어머니의 정부(情夫)가 정기적으로 헤로인 주사를 놓아준다면서 그 사람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하였다.

어린이 마약중독이라는 이 센세이셔널한 기사에 대한 독자들의 반향은 컸다. 많은 사람들이 지미를 찾아서 보호해야 한다면서 재닛 쿡에게 지미의 소재지를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그녀는 취재원 보호를 위해 밝힐 수 없다며 거부한다.

사회적으로 커다란 주목을 받았던 이 특종기사로 재닛 쿡은 이듬해인 1981년 4월 13일 특집보도부문 퓰리처 상을 받기에 이른다.

그런데 쿡이 퓰리처 상을 받은 바로 그날부터 그녀의 학력 사항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들이 터져 나왔다. 학력이 위조되었다는 거였다.

쿡이 석사학위를 받은 것도 사실이 아니고, 파리의 소르본대학을 다닌 경력도 없다는 것이다.

기사의 진위(眞僞)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었다. 신문사가 발칵 뒤집혔다. 포스트지는 옴부즈맨 윌리엄 그린에게 즉각 사건의 진상을 밝히도록 지시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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