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 노래 속의 진달래꽃 -

▲ ‘봄이 오면’ 원본

우리가 흔히 가곡으로 알고있는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로 시작되는 ‘봄이 오면’은 파인 김동환(1901~1950)의 시다. 파인이 경영하던 삼천리사에서 1929년에 이광수, 주요한과 함께 펴낸 ‘3인 시가집’에 들어있다. 그후 1942년에 나온 그의 단독 서정시집 해당화(1942)에도 실려있다. 1931년 무렵에 김동진(1913~2009)에 의해 곡이 붙여져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봄을 노래한 대표적인 가곡 가운데 하나이다.

 

    봄이 오면

 

          김동환 작시 김동진 작곡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건너마을 젊은 처자 꽃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가주

 

봄이 오면 하늘 위에 종달새 우네

종달새 우는 곳에 내 마음도 울어

나물캐는 아가씨야 저소리 듣거든

새만말고 이 소리도 함께들어주

 

나는야 봄이되면 그대 그리워

종달새 되어서 말붙인 다오

나는야 봄이 되면 그대그리워

전달래 꽃이되어 웃어본다오

 

‘작곡가 김동진’ 하면 보통 ‘가고파’를 떠올린다. 그가 작곡한 가곡 ‘가고파’가 워낙 유명하기 때문이다. 1913년 평안남도 안주 태생인 김동진은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로 이어지는 목사 가정에서 자라나 어려서부터 교회의 풍금과 가깝게 지냈다. 11살 때 아버지가 바이올린을 사준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음악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문학에도 많은 흥미를 갖고 있었다. 숭실중학교 시절 앞서 말한 ‘3인 시가집’에 있는 세사람의 시 가운데, 김동환의 ‘봄이 오면’, 주요한의 ‘부끄러움’, 이광수의 ‘외붓 한자루’를 늘 외우고 다니면서 언젠가 이 세 편의 시를 작곡하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다.

김동진은 당시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중학 5학년때 (당시 중학은 5년제였다) 어느날 밤, 학교 음악실에서 혼자 바이올린 연습을 끝내고 풍금을 치며 발성연습을 하던중 갑자기 평소 외우고 있던 ‘봄이오면’의 “건너마을 젊은 처자~”의 악상이 떠올랐다. 동시에 그의 손은 어떤 선율을 짚고 있었다.

김동진은 후일 그의 작곡집 ‘내마음’(1973)에 실은 회고의 글에서 당시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즉시 오선지에 (머리에) 떠오른 그 선율을 옮기게 되었고 그것이 끝나자 그 선율은 내가 지은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만큼 나의 마음은 온통 황홀감에 차 있었다. 곡이 완성된 뒤 나는 한방에서 지내던 장대욱에게 처음 그 노래를 배워 같이 불렀고 그 후 이 노래는 삽시간에 온 기숙사에 퍼졌으며 숭실전문학교에까지 파급되어 모르는 학생이 거의 없을 정도로 애창되었다. 그때의 그 감격은 지금도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것은 바이올린에서와는 판이한 희열을 내게 안겨 주었으며 이때부터 작곡에 대한 나의 집념은 더 강렬하게 나의 온 마음을 사로 잡았다.”

이때가 김동진이 열여덟살 때이다. 그후 숭실전문학교에 진학하여 담임이었던 양주동 선생에게 배운 이은상의 시조 ‘가고파’에 곡을 붙인다. ‘가고파’작곡은 1933년의 일이니 그의 나이 스무살 때이다.

한편 ‘봄이오면’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봄을 알리는 꽃은 단연 진달래꽃이 아니었던가 한다. ‘봄이오면’ 뿐만 아니라 봄을 읊은 많은 시와 노래에 빠지지 않는 것이 ‘진달래’다. 지금 사람들은 봄꽃하면 매화-산수유-벚꽃-목련부터 연상한다. 그러나 이전부터 우리 민족에게 더 친근했던 봄꽃은 진달래였다.   

 이정식(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전 CBS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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