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이옥희 교수(서원대)가 얼마전 필자에게, 청주에서 4월에 열리는 ‘제자사랑 스승사랑 피아노 페스티벌’에 우정출연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노래를 두어곡 부르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가곡 ‘눈’이 내 목소리에 잘 어울릴 것이라고 곡목 지정까지 했다.
눈
김효근 작사/작곡
조그만 산길에 흰 눈이 곱게 쌓이면
내 작은 발자욱을 영원히 남기고 싶소
내 작은 마음이 하얗게 물들 때까지
새하얀 산길을 헤매이고 싶소
외로운 겨울새 소리 멀리서 들려오면
내 공상에 파문이 일어 갈 길을 잊어버리오
가슴에 새겨보리라 순결한 임의 목소리
바람결에 실려오는가 흰 눈 되어 온다오
저 멀리 숲 사이로 내 마음 달려가나
아 겨울새 보이지 않고 흰 여운만 남아있다오
눈 감고 들어보리라 끝없는 임의 노래여
나 어느새 흰 눈 되어 산길 걸어간다오
필자는 이 노래를 잘 알고는 있었으나 직접 불러 본 일은 없었다. 이 교수의 권유로 몇 번 불러보았는데, 별 무리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도 필자의 목소리에 잘 어울리는 곡 같다고 했다.
그래서 무대에서 부를 두 곡 중 한 곡은 ‘눈’으로 하기로 용기있게 결정했는데 막상 노래를 연습하려니 걸리는 것이 있었다. 악보와 가사가 악보책마다 부분적으로 달랐기 때문이다.
우선 곡 중간의 “내 공상에 파문이 일어 갈 길을 잊어버리오…”의 ‘잊어버리오’ 중 ‘잊’의 음높이가 가곡집마다 서로 달랐다. 앞뒤 음과 같은 것이 있는가 하면 한 음 높은 것이 있었다.
또 어떤 악보책에는 “발자욱을 영원히 남기고 싶소…”라고 되어있고, 어떤 것엔 ‘발자국’으로 되어있다. 이렇게 서로 다르게 적혀있어서, ‘잊어버리오’도 ‘잃어버리오’의 오기가 아닐까하는 의심도 들었다.
이 모든 의문점들을 푸는 방법은 작사·작곡을 한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느 분께 전화번호를 얻어 2011년 3월 9일 오전 작사·작곡자인 김효근 선생에게 전화를 했다. 김 선생은 상냥하게 전화를 받으셨다. 필자 소개를 잠시하고 전화를 한 이유를 설명했다.
다음은 필자의 의문에 대한 김 선생의 답:
첫째, ‘잊어버리오’에서 ‘잊’의 음은 앞뒤와 같은 음이 원래의 것이다. 즉 한 음 높인 것은 원래 악보대로가 아니다.
둘째, ‘잊어버리오’가 맞다.
세째, ‘발자욱’이 원래의 가사다.
김 선생은 해외에서 돌아와 보니 -당시만 해도 저작권에 대한 의식이 없을 때여서- 출판사에서 저마다 원작자의 허락도 없이 악보를 실었는데, 부분적으로 원래 악보대로 싣지 않은 것이 많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많이 출판이 되어버려 수습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목소리를 들으니 김 선생은 밝고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 같았다. 몇 가지 궁금한 것을 더 물어보고 기분 좋게 통화를 마쳤다.
김효근 선생은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이다. 작곡가가 경영학과 교수라니 특이한 케이스다. (이제부터는 김 교수로 호칭한다.)
가곡 ‘눈’은 1981년 MBC 대학가곡제 대상 수상 작품이다. 당시 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 3학년 학생이었다. 노래는 서울대 성악과 1학년이었던 소프라노 조미경이 불렀다.
김 교수는 “대학가곡제에 출품하기 위해 곡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작시와 작곡을 병행했다. 당시 예선을 거쳐 11월의 본선까지 올라갔는데, 심사위원들이 ‘눈’이 ‘자시가곡’(自詩歌曲, 작곡자가 작사까지 한 가곡)이라는 점에 점수를 더 준 것 같다”고 말했다. ‘눈’이 대상을 타자 그 영향으로 ‘자시가곡’이 점차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정식(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전 CBS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