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회 MBC 대학가곡제 기념 레코드에 실려있는 김효근과 조미경의 모습.

피아니스트 이옥희 교수(서원대)가 얼마전 필자에게, 청주에서 4월에 열리는 ‘제자사랑 스승사랑 피아노 페스티벌’에 우정출연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노래를 두어곡 부르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가곡 ‘눈’이 내 목소리에 잘 어울릴 것이라고 곡목 지정까지 했다.

                               

                 눈

                        김효근 작사/작곡

 

조그만 산길에 흰 눈이 곱게 쌓이면

내 작은 발자욱을 영원히 남기고 싶소

내 작은 마음이 하얗게 물들 때까지

새하얀 산길을 헤매이고 싶소

 

외로운 겨울새 소리 멀리서 들려오면

내 공상에 파문이 일어 갈 길을 잊어버리오

가슴에 새겨보리라 순결한 임의 목소리

바람결에 실려오는가 흰 눈 되어 온다오

 

저 멀리 숲 사이로 내 마음 달려가나

아 겨울새 보이지 않고 흰 여운만 남아있다오

눈 감고 들어보리라 끝없는 임의 노래여

나 어느새 흰 눈 되어 산길 걸어간다오

 

필자는 이 노래를 잘 알고는 있었으나 직접 불러 본 일은 없었다. 이 교수의 권유로 몇 번 불러보았는데, 별 무리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도 필자의 목소리에 잘 어울리는 곡 같다고 했다.

그래서 무대에서 부를 두 곡 중 한 곡은 ‘눈’으로 하기로 용기있게 결정했는데 막상 노래를 연습하려니 걸리는 것이 있었다. 악보와 가사가 악보책마다 부분적으로 달랐기 때문이다.

우선 곡 중간의 “내 공상에 파문이 일어 갈 길을 잊어버리오…”의 ‘잊어버리오’ 중 ‘잊’의 음높이가 가곡집마다 서로 달랐다. 앞뒤 음과 같은 것이 있는가 하면 한 음 높은 것이 있었다.

또 어떤 악보책에는 “발자욱을 영원히 남기고 싶소…”라고 되어있고, 어떤 것엔 ‘발자국’으로 되어있다. 이렇게 서로 다르게 적혀있어서, ‘잊어버리오’도 ‘잃어버리오’의 오기가 아닐까하는 의심도 들었다.

이 모든 의문점들을 푸는 방법은 작사·작곡을 한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느 분께 전화번호를 얻어 2011년 3월 9일 오전 작사·작곡자인 김효근 선생에게 전화를 했다. 김 선생은 상냥하게 전화를 받으셨다. 필자 소개를 잠시하고 전화를 한 이유를 설명했다.

다음은 필자의 의문에 대한 김 선생의 답:

첫째, ‘잊어버리오’에서 ‘잊’의 음은 앞뒤와 같은 음이 원래의 것이다. 즉 한 음 높인 것은 원래 악보대로가 아니다.

둘째, ‘잊어버리오’가 맞다.

세째, ‘발자욱’이 원래의 가사다.

김 선생은 해외에서 돌아와 보니 -당시만 해도 저작권에 대한 의식이 없을 때여서- 출판사에서 저마다 원작자의 허락도 없이 악보를 실었는데, 부분적으로 원래 악보대로 싣지 않은 것이 많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많이 출판이 되어버려 수습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목소리를 들으니 김 선생은 밝고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 같았다. 몇 가지 궁금한 것을 더 물어보고 기분 좋게 통화를 마쳤다.

김효근 선생은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이다. 작곡가가 경영학과 교수라니 특이한 케이스다. (이제부터는 김 교수로 호칭한다.)

가곡 ‘눈’은 1981년 MBC 대학가곡제 대상 수상 작품이다. 당시 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 3학년 학생이었다. 노래는 서울대 성악과 1학년이었던 소프라노 조미경이 불렀다.

김 교수는 “대학가곡제에 출품하기 위해 곡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작시와 작곡을 병행했다. 당시 예선을 거쳐 11월의 본선까지 올라갔는데, 심사위원들이 ‘눈’이 ‘자시가곡’(自詩歌曲, 작곡자가 작사까지 한 가곡)이라는 점에 점수를 더 준 것 같다”고 말했다. ‘눈’이 대상을 타자 그 영향으로 ‘자시가곡’이 점차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정식(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전 CBS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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