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성일, 김지미 주연의 영화 ‘동심초’ 포스터(왼쪽)와 가수 권혜경씨의 생전 모습.

1967년 출연배우가 신성일, 김지미, 남정임으로 바뀐 두 번째 ‘동심초’도 나왔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하는 노래 가사와 같이 ‘주인공 두 사람은 사랑하면서도 맺어지지 못하고 결국 헤어진다’는게 영화의 스토리다.

권혜경씨가 영화주제가로 부른 ‘동심초’가 당초 김성태 선생이 가곡으로 만든 것을 가요풍으로 부른 것이라는 것은 앞서 말한 바 있다.

1950년대 그 당시엔 가곡 작곡으로 유명한 김성태 선생이나 김동진 선생이 영화 음악, 영화 주제가를 많이 만들던 시기였다. 그래서 일부에선 순수 음악에서 벗어났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렇게 대중가요로 불리던 ‘동심초’가 어떻게 다시 가곡으로 굳건히 자리잡게 되었는지 잘은 모르지만, 이 노래가 대중가요적인 요소가 있음에도 원래 작곡된대로 가곡으로 더 어울렸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권혜경씨 같은 목소리의 가수가 세미 클래식한 창법으로 부르지 않았더라면 이 노래가  가요로 히트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동심초’ 같이 가곡에서 대중가요로 히트했다가 다시 가곡으로 정착한 유사 케이스로 ‘보리밭’을 들 수 있다. ‘보리밭’은 6·25전쟁 중인 1951년 시인 박화목이 가사를 만들고 윤용하가 작곡한 가곡이지만, 1970년대에 가수 문정선이 고고 스타일로 부른 후 더욱 유명해졌다. 그후 ‘보리밭’은 언제나 인기 가곡의 반열에 있다. 김소월 시로 된 가곡 중 가장 꾸준히 불리는 김동진 곡 ‘진달래꽃’은 1962년 소월의 생애를 다룬 영화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이여’의 삽입곡이기도 했다.

노래가 히트한 후 같은 제목으로 영화까지 만들어진 케이스도 있다. 1968년에 만들어진 ‘비목’인데 1979년 이 제목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한때 가수로서 인기절정을 달렸지만, 권혜경씨의 인생은 기구했다. ‘산장의 여인’으로 유명 가수가 된 직후인 1950년대 말부터 심장판막증, 후두암 등 각종 병마가 닥쳐 평생을 투병하며 홀로 살다가 2008년 청주 효성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로 시작되는 ‘산장의 여인’처럼 외롭게 일생을 마쳤다.

         산장의 여인

                  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단풍잎만 채곡채곡 떨어져 쌓여있네

세상에 버림받고 사랑마저 물리친 몸

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나 홀로 재생의 길 찾으며 외로이 살아가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풀벌레만 애처러이 밤새워 울고 있네

행운의 별을 보고 속삭이던 지난 날의

추억을 더듬어 적막한 이 한밤에

임뵈올 그날을 생각하며 쓸쓸히 살아가네

 

자신의 인생 역정이 ‘산장의 여인’의 가사와도 너무 비슷해 권씨가 이 노래의 작사자를 원망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래서 ‘노래가 사람의 운명을 바꾼다’는 말도 나왔다. 그녀는 ‘열렬한 연애를 한번 해 보는게 꿈’이라고 했으나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오랜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전국의 재소자 시설을 찾아다니며 위문과 강연 등 봉사활동을 열심히 했다. 재소자들로부터 ‘어머니’로 불렸다고 한다. 이같은 봉사활동으로 1982년 세계 인권 선언 기념일에 ‘인권유공표창’을 받는 등 많은 표창을 받았다. 강원도 삼척 출신인 권혜경이 마지막으로 산 곳은 충북 청원군 남이면이다. 그녀는 여기에서 1994년 5월부터 14년을 살았다. 세상 떠나기 3년 전쯤 이곳에 찾아온 손님(대중음악 평론가 박성서씨)에게 자신의 묘 앞에 ‘산장의 여인’ 노래비를 세우고 싶다고 했다. 집안의 냉장고에는 ‘나 죽으면 연락해 주세요. 손 아무개, 전화 02) 907-XXXX’ 이라고 쓰여진 메모지가 한 장 붙어있었다고 한다. 권혜경씨는 2008년 5월 25일 영면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