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은 무엇으로 만드는가?

▲ 염판에 가라앉은 소금결정을 큰 나무가래로 채취하는 대패질을 하고 있다.

“소금을 무엇으로 만드는 줄 아십니까?”

염전 책임자가 일행에게 물었다.

누군가 답했다.

“바닷물!”

“바닷물은 맞는데, 바닷물에 태양과 바람과 사람의 정성을 합쳐 소금을 만드는 겁니다.”

지난 9월 18일 꼭두 새벽, 청주의 사진 동호인 모임인 ‘10인 10색 청평포토’(회장 양천공)회원들을 따라 전북 영광군 불갑사로 향했다.

필자는 낚시꾼들을 따라 새벽 출조한 일은 어려서부터 많이 있었지만, 사진꾼(이런 표현이 실례가 안될지 모르겠다)들을 따라 나선 출사는 처음이었다.

이른 아침 불갑사에 도착하니 사찰 주위 이곳 저곳에 연분홍빛의 아름다운 상사화(일명 꽃무릇)가 크고 작은 군락을 이루며 피어있었다. 어디선가 먼저 온 사진 애호가들이 상사화가 담긴 초가을 풍경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최종 목적지인 해넘이 마을 동호리 염전에 간 것은 상사화 촬영을 마치고 텅 빈 동호 해수욕장을 들러본 후 점심식사를 하고나서였다.

오후 1시 반이 조금 지난 시간에 염전에 도착했다. 일행이 차에서 내려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책임자인 듯한 분이 일행을 모두 불러세우더니 주의사항 겸 일장 훈시를 시작했다. 처음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사진 찍는 분들이 사회적으로는 어느 수준 이상인 분들로 아는데 이런데 와서 하는 행동을 보면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고 일침을 놓은 뒤, “여기는 사업장인데 말 한 마디 안 하고 함부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은 예의 없는 짓 아니냐?”고 반문했다. 일리있는 말이었으므로 모두 얌전한 학생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그동안 사진 때문에 겪었던 몇가지 불편했던 사례들을 이야기했다.

책임자는 이어 자신은 조치원 출신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와-”하고 탄성이 터졌다. 다소 긴장됐던 분위기가 금세 달라졌다. 고향 사람이나 다름 없는 분을 만났으니까.

그 분은 P선생으로 연세는 육순이 조금 넘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소금창고 앞 등으로 장소를 옮겨가며 1시간 넘게 유익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었다. 이야기 중에 간혹 육두문자도 섞였지만, 그리 거슬리지 않았다.

일행이 그 분의 이야기를 그렇게 오래 듣게 된 것은 현장에 너무 일찍 갔기 때문이다. 염전은 한낮의 따가운 햇빛 속에서 소금의 결정체인 소금꽃이 눈송이처럼 하얗게 소금물 위에 생겼다 가라앉으면 채취작업이 시작되는 것이어서 오후 4시쯤 되어야 비로소 작업이 시작된다.

염전에서 소금을 채취할 수 있는 기간도 3월에서 10월까지다. 해가 짧은 겨울철엔 소금 채취가 안 된다. 바둑판처럼 네모 반듯하게 생긴 염판은 하나가 50평 정도. 일행이 간 동호리 염전(삼양사 염전)은 16만평의 규모다.

천일염의 수요가 많았던 시절에는 110만평에 이르렀던 국내 두 번째 규모의 염전이었다고 한다. 염판에 가라앉은 소금결정을 큰 나무가래로 채취하는 일을 대패질이라고 하는데 일행은 대패질이 시작 될 때까지 P선생을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다음과 같은 자문자답식 소금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소금은 언제 사는 것이 좋은가?”

“소금은 3월부터 채취가 가능하지만 송화가루 날리고 아카시아 꽃이 피는 오뉴월부터 좋아진다. 소금이 많이 나오고 소금이 쌀 때가 질이 좋은 때다. 싸다면 오히려 안 사는 바보들도 있는데 이 때 사는 것이 좋다. 가르쳐 주지 않을 건데 가르쳐준다.”

“소금은 어디에 저장하는 것이 좋은가?”

“깨진 항아리가 좋다. 수분을 빨아들여야 하니까. 소금은 수분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는데, 흐린 날이나 비오는 날 공기 중의 수분을 흡수해서 불순물을 내려줘야 진짜 소금 맛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 어머니들은 3년에서 5년씩 소금을 묵혔다.”

“천일염이 왜 좋은가?”

“천일염에는 미네랄이 있어서 건강에 좋다. 전 세계 천일염 중에 한국의 천일염에만 미네랄이 있다는 것을 일본에서 규명해줬다(그분 주장). 프랑스의 게랑드 소금이 좋다고 하지만 미네랄이 한국 천일염의 절반도 안 된다.”

P선생은 그 밖에도 소금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을 한 뒤 이렇게 마무리를 했다.

“바닷물은 뭐든 다 받아준다. 바닷물 속에는 3%가 안 되는 소금이 있다. 이것이 정화작용을 해주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아무리 썩었다고 해도 썩지 않은 사람 세 사람만 있으면 건강해질 수 있다. 여러분들이 그런 역할을 해 줘야 대한민국이 더 나아질 수 있다.”

돌아올 때 생각해보니 그분은 명 소금 강사일 뿐 아니라 애국자요 철학자였던 것 같다.

이정식(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전 CBS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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