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부 귀농

다시 평생교육원에서 사암오행침도 배웠다. 이제 주변에서 침쟁이로 소문이 날 정도로 발전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곳은 낯선 객지다. 객지 사람이 들어와서 면허도 없이 침을 놓기 시작하면 말썽이 생길 수도 있다.

‘돈만 받지 않으면 걸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단 한 번도 돈을 받은 적은 없다. 제발 침 좀 맞아보라고 사정하거나 밥을 사준 적은 있지만 돈을 받은 적은 없다. 운이 나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침은 가지고 가야 한다. 시골은 병원이 먼데다 농사철엔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니까 침을 맞으러 다닐 시간도 없을 것이다.

‘이것 말고 베풀 수 있는 게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창빈은 책 한권을 빼든다. 사주정해라는 책이다. 사주풀이를 해주는 게 침을 놓아주는 것보다 효과가 클지도 모른다. 신문사에 근무할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기사를 쓰는 기자의 입장에선 자기가 쓴 기사가 많이 읽히기를 바란다.

그게 가장 기분 좋은 일이다. 놀라운 것은 그 많은 기사들보다도 많이 읽히는 게 바로 운세였다. 그만큼 운에 의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뜻이다. 창빈은 동양철학이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을 한다.

“음양오행!‘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고, 밤이 있으면 낮이 있다는 게 음양오행의 원리다. 이것도 침을 배우면서 알게 된 것이다. 침술의 기본이 되는 공식이기도 하다. 우리가 수학을 배우기 위해선 구구단을 외워야 한다. 구구단을 알면 곱하고 빼는 게 쉬워진다.

공식에 대입하기만 하면 된다. 만약 구구단이 없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곱하고 빼느라 수고해야 했을까? 구구단을 알면 8×9는 72 하면 될 텐데, 구구단을 모르면 8을9번이나 더해야 한다. 비슷한 예로 사과 72개를 9명에게 나눠주기 위해서는 72÷9하면 금방 답(8개)이 나온다.

단순한 공식을 알지 못하면 8개씩 9번을 빼야 된다. 음양오행은 삼라만상을 지배하는 공식이다. 이 공식을 모르면 구구단을 모르는 것처럼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것을 모르고 평생 살면서도 불편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없다.

반대로 한번 심취하면 평생 파고들어도 끝이 안보일 정도로 깊이가 있다. 창빈이가 특히 신기해하는 것은 운명을 예측할 수 있는 신통력이 있다는 점이다. 창빈은 아침마다 달력을 본다. 달력에는 갑자 을축하는 육십갑자가 쓰여있다.

그것을 나의 일간(日刊)에게 대입해보면 그날의 운세를 알 수가 있다. 오늘은 누군가로부터 식사대접을 받을 수 있는 운세지만 내일은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시비가 생길 수도 있다.  백 프로 다 맞는 것은 아니지만 대충은 맞는다. 그게 무당이 신기로 맞추는 것처럼 미신적인 게 아니라 과학적이라는데 신비감을 느낀다. 창빈은 역술 책 몇 권을 짚어든다. 까맣게 손때가 묻어있다. 그만큼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증거다. 그중에서 만세력(萬歲曆)이라고 쓰여 있는 책을 펼쳐든다.

“이것만 가지고 가면 된다.‘

물론 써먹지도 못할 수도 있다. 소용도 없는 책을 가지고 간다는 것은 짐만 된다. 그래도 가지고 가야한다. 누굴 위해서 점을 쳐줄 일이 없더라도 가져가고 싶다. 나 자신을 위해서 쓰고 싶다. 내 운명이 어디쯤 와 있는지는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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