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외신기자 간담회장에서 진땀나는 질문을 받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에반 람스타드’ 기자가 느닷없이 “한국의 룸살롱 문화 때문에 한국 여성의 기업 취직이 힘든 게 아니냐”는 당돌한 질문을 던진 것이다.

제 딴에는 여성의 날을 맞아 한국 여성의 사회 참여율에 대한 진지한 분석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국 경제 설명을 위해 마련된 엄숙한 간담회에서 노골적으로 룸살롱을 들먹이며 장관에게 대든 막돼먹은 행동에 재정부의 심기가 편할 리 없게 됐다.

월스트리트저널 기자의 질문은 한국 여성의 취업 문제에 그친 것이 아니다. 장관이 잘못된 정보라며 즉각 변명을 하자 “기업체 직원들이 재정부 직원들을 룸살롱에 데려가는 걸로 아는데 이에 대한 기준이 있느냐”며 질기게 옷자락을 잡고 늘어졌다.

없다고 우기면 없어지나

곁에 있던 CBS라디오의 ‘돈 커크’ 기자까지 거들고 나섰다. “룸살롱에서 가장 돈을 많이 쓰는 게 대기업 인사들인데 이런 대기업들에 대한 세금 감면 등 접대비 허용은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하지 않느냐”며 따지고 든 것이다.

외신기자의 발언이라기보다 여성부나 시민단체의 질책 같은 난처한 내용의 질문이다. 이런 수모를 당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장관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장관의 구체적인 반박으로 구설만 더 무성해졌다. 최근 발령 받은 검사 중 절반이 여성이고 가정에서도 한국 여성만큼 경제권을 가진 나라가 없다면서 여성 사회 활동이 커져 오히려 저 출산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장관의 잘못된 정보에 귀를 의심하게 된다. 무슨 실수를 했는지 짚어 주기조차 민망한 지식이다.

장관을 편들기 위해 나선 일부 언론의 기사도 부끄럽긴 마찬가지다. 외국 언론의 서울 특파원들이 윤 장관을 공개적으로 망신 주려 한 것이라는 비난을 퍼부었다. 한국의 모든 남성과 여성을 비하한 것은 물론 한국의 직장 문화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라며 흥분하는 이들에게 얼음 섞은 냉수 한 사발 권하고 싶은 심정이다.

실명을 밝히지 않아 실체가 불분명한 재정부 관계자의 의견 역시 머리를 멍하게 한다. 한국을 잘 아는 것처럼 곤란한 질문을 하는 이런 기자들은 공부가 게을러 한국의 역사와 문화, 경제 등에 대해 잘 모르거나 인종적 편견을 가진 경우가 많다며 “외신기자 간담회를 계속 해야 하는지 회의가 생긴다”고 했단다. 차마 큰소리로 외칠 수 없어 혼자말로 “Would you please 닥쳐줄런를 웅얼거려 본다.

본래 병에 듣는 좋은 약이 입에 쓰다 했다. 터무니없이 부당한 공격을 당했다 쳐도 일단은 자신의 험을 살펴야 하거늘 귀에 거슬리는 질문을 받았다 해서 이렇게까지 민감한 반응을 보이다니. 발칙한 질문을 거르지 않고 퍼부은 외신기자들보다 비 맞은 염소처럼 열이 뻗쳐 있는 재정부 관계자들의 태도가 혀를 차게 만든다.

대한민국을 접대공화국이라고 한다. 외국 언론의 비아냥거림이 아닌 우리들의 자조적 고백이다. 어떤 식의 흐뭇한 접대가 이루어졌는가에 따라 일의 성패가 결정되는 접대 문화로 엄청난 접대비가 매년 날아가고 있다.

접대비 부담으로 기업의 허리가 휘는 왜곡된 접대 문화를 재정부가 모르고 있었을까. 모르는 척, 안 들리는 척 표정 관리를 하고 있는 것이 낫지 그런 일이 없다며 화를 낸다면 꼴이 점점 더 한심스러워진다는 것을 왜 모를까.

접대문화 반드시 바꿔야

한해 7조원에 달하는 기업의 접대비 중 외신기자들이 지적한 룸살롱 등 유흥업소에서 사용한 액수가 거의 2조원이다.

접대비의 규모가 천문학적으로 늘다보니 모든 방송, 언론 매체에서 접대 문화의 병폐를 세세히 다뤄줬고, 지나치게 친절한 언론 덕에 룸살롱 접대가 성접대로 코스화 됐다는 것은 남성들끼리의 은밀한 비밀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의 일반 상식이 됐다.

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887명을 대상으로 접대 문화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25.6%가 성접대를 순순히 인정했다는 결과 발표가 있었다. 성접대가 접대 관행 중 하나라는 대답과 함께 술자리는 물론 매춘까지도 업무의 연장이라는 직장인들의 떳떳하고 당당한 인식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룸살롱 문화 때문에 한국 여성의 기업 취직이 힘든 게 아니냐는 월스트리트저널 기자의 질문은 우리의 급소를 제대로 찔렀다. 너무나 아파서 비명도 못 지를 정도다. 룸살롱 접대 관행 때문에 여성들이 취업에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접대 문화를 위해 직업여성들이 늘고 있는 현실이 더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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