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기가 같이 있는 노부부가 잠자리에 들었다. 할아버지가 옛 습관대로 할머니에게 슬그머니 기대긴 했으나 자신의 위치와 행동을 판단할 수 없었다. “여기가 워디유?” 아닌 밤중에 난데없는 질문을 받은 할머니가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근데, 댁은 누구슈?”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상황이다.

정상적이던 지능이 대뇌의 질환 등으로 저하되어 차츰 인간적인 품위를 잃게 만드는 치매를 어떤 병보다 힘든 병이라고 한다. 특히 치매환자를 둔 가족이 받는 스트레스는 당해보지 않고는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고통 중의 고통이다.

보기엔 딱하지만 치매에 걸려 모든 기억을 놓아 버린 환자는 차라리 곁에서 그를 지켜보는 가족보다 나을 것이다. 환자가 자신을 추스르지 못하므로 가족들은 환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듯 쫓아다녀야 한다.

남편의 숨을 끊은 아내

종일 말썽을 만드는 노인을 따라다니며 수발하는 일이 오죽하겠는가. 처음에는 눈물을 흘리며 환자를 살뜰히 보살피던 가족들은 좋아질 기미 없이 온 집안을 엉망으로 만드는 환자에게 차츰 진저리가 날 수 밖에 없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언이 현실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방치되거나 학대받는 치매노인 문제는 고령화 시대의 가장 큰 고민이 됐다. 세계 최장수국으로 부러움을 샀던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자리보전하고 지내는 노인을 간병 가족들이 살해하는 가족 살인이 몇 년 전부터 급증하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병 수발에 지쳐 부모나 배우자를 죽이는 일이 속출하다보니 ‘간병 살인을 막는 요령’이란 무시무시한 제목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형편이다.

치매 남편을 흉기로 살해한 부인에 대해 자신도 4년 째 간병 중이라는 일본 할머니가 TV 화면에 나와 담담히 말했다. “환자를 죽이는 사람들의 기분을 알 것 같아. 내 앞날을 생각하면 정말 눈앞이 캄캄하네.” 솔직한 고백이다.

간병 살인은 이제 이웃 나라 문제가 아니다.

엊그제 청주지법 형사11부는 병석에 누운 여든 여섯 살 남편을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여든 두 살의 할머니에게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부부는 세 자녀를 키우며 60여 년을 함께 살았다. 할아버지가 노환으로 병석에 눕게 되면서 오랜 세월을 탈 없이 해로하던 노부부에게 그늘이 드리워졌다. 음식을 먹지 못해 체중이 30㎏ 밖에 나가지 않게 된 환자에게 치매 증세까지 따라왔다. 병석에 누운 지 1년 반이 된 지난해 10월, 할아버지가 발작을 일으켰다. 너무도 괴로워하는 남편의 모습을 지켜보던 할머니는 한복 바지 끈으로 할아버지의 목을 졸랐다.

할머니는 “남편이 산송장처럼 집에만 누워 있는 게 측은해 저 세상으로 일찍 보내 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날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너무 괴로워하기에 목을 졸랐다”고 했다.  불쌍해서 숨을 끊어주었다는 할머니의 진술에서 남편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느껴진다.

재판부도 할머니의 사정을 참작했다. ‘피고인이 60년 넘게 같이 산 피해자를 목 졸라 살해한 죄는 가볍지 않지만 안타까운 마음에 목을 조른 점, 피고인도 고령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젼등을 고려해 살인죄를 인정하면서도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이다. 병 수발에 지친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살해한 후 아내 뒤를 따라 자살한 사건은 간혹 있었지만 청주에서 일어나 전국에 파장을 일으킨 이 사건은 간병하던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살해한 드문 사례다.

그러나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사회에서 적극적인 치매노인 대책이 새워지지 않는다면 이와 유사한 범죄는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닥칠 수도 있어

지난해 집계된 치매환자가 무려 13만7천명이다. 50대 미만 치매환자도 5천명에 달하고 있다. 치매환자 진료비는 3천800억 원으로, 7년 전보다 무려 11배가 늘었다. 청구된 건강보험 진료비만도 이런데 간병인 비용 등 환자 가족들의 개인적 부담을 모두 따져 본다면 치매 관리 비용은 입이 벌어지는 액수일 것이다.

누구나 가볍게 ‘나도 치매인가 봐’를 뇌곤 한다. 장난처럼 입에 올리지만 자신을 망가뜨리고 가족까지 못쓰게 만드는 치매는 암보다 무서운 병이다.

해마다 25%씩 급증하고 있는 치매환자가 2027년이면 100만명을 돌파할 것이라니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관리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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