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부 불편한 이웃

그게 바로 4층 키다리가 무료입장을 알리는 광고라는 것을 알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키다리가 저렇게 나오면 싸움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나이 먹은 사람들은 다 4층으로 올라 갈 테고, 젊은 사람들만 1층으로 몰릴 것이다.

무슨 귀신이라도 붙은 것처럼 그런 현상이 반복될 것이다. 대머리는 답답한 기분이 든다. 한가롭게 주변을 거닐며 일상의 풍경을 즐겨보고 싶었는데,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아프게 한다. 대머리는 통증을 참으려는 환자처럼 땅만 보고 걷는다. 파라다이스 카바레 앞을 지나 사직사거리 쪽으로 느린 걸음을 옮긴다. 거기에 키다리 한 사장이 나와 전봇대처럼 서있다.

‘저 친구가 왜 저기에 서있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멈칫한다. 숨을 죽이고 동태를 살핀다. 건물을 통째로 뒤덮을 만큼 큰 초대형 현수막을 걸고 나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키다리는 이만하면 대머리도 기가 죽을 것이라는 기분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한참을 서있던 키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보무도 당당하게 카바레 골목으로 걸어온다.

그걸 바라보는 대머리의 마음은 허망하다. 20일 동안이나 죽기 살기로 싸운 싸움이 일거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는 기분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을 하며 대머리도 카바레 골목을 향해 걷는다.

두 사람은 골목중간에서 마주친다. 평소 대머리 같으면 샐쭉하며 얼굴을 돌렸을 것이다. 오늘은 맥없이 웃고 만 있다. 그 미소가 어쩐지 슬퍼 보인다. 키다리도 그렇다. 이 골목에서 마주치면 못 본 척 얼굴을 외면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냥 멍하니 서있을 뿐이다.

‘도대체 어쩔 작정이요?

‘누가할 소리요?’

‘이 정도했으면 됐지 않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 말이요.’

‘그럼 어디 가서  술이나 한잔 합시다.’

‘그럽시다.’

이런 말을 하고 싶은데도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상대방이 먼저 무슨 말이든 해주길 바란다. 그런 모습이 뺑이들에게도 희한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오늘 한바탕 놀아보려고 카바레 골목으로 들어서던 뺑이들이도 발을 멈춘다. 기상천외한 광경을 보고 넋을 잃는다. 개와 고양이가 마주쳤는데 싸울 생각은 않고 서있으니 얼마나 우스운가.

“이상한 일도 다 보겠네.”

4층 계단으로 올라서던 한 여자가 친구에게 한 말이다.

“뭐가?”

“공짜입장도 다 끝나 가나봐.”

“왜?”

“저 사람들이 안 싸우잖아.”

공짜로 다닐 때가 좋았다는 생각을 하며 계단을 오르던 여자들은 카바레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소리에 빠져들고 만다.

“만약에 당신이 그 누구와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을 위해서 무얼 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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