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환경 문제는 에너지 자원·인구·식료·오염 등과 정칟경제·문화가 유기적으로 관련되는 초복합계 문제이다.

예를 들어 일본해 연안에 내리는 산성비의 원인은 중국 대륙에서 산업 활동 등 이원인이라고 생각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지 기술적인 해결책을 고안하는 것만이 아니고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정치적·경제적인 문제 해결 능력이 요구된다.

체로노빌 원전사고로 비산한 방사성 물질은 러시아나 유럽 지역만이 아니고 일본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1개의 지역이나 나라에서 이루어진 ‘행위’가 지구 전체의 환경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환경에 대한 행위에 관한 고찰, ‘환경윤리’가 요구되고 있다.

환경 윤리 사상 확대의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은 레이첼 카손(Rachel Carson, 1907~1964)에 의한 ‘침목의 봄’(1962)의 출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카손은 DDT(Dichloro Diphenyl Trichloro-ethane) 등의 유기 합성 농약은 완만한 세포핵 살상무기에 지나지 않으며 환경계에 치명적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 후 일본을 포함해 공업화에 의해 경제성장을 계속하는 세계 각지에서 공해문제가 표면화됐다.

한층 더 로마·클럽의 위탁을 받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연구자를 중심으로 하는 그룹이 당시 최신의 시뮬레이션 기법에 의한 결과를 ‘성장의 한계’(1972)로 발표해 지구 자원은 유한하고, 환경은 희소가치를 가지는 것을 지적하기에 이르러 환경 문제가 넓게 인지되게 되었다.

환경 윤리학이 주장하는 3가지의 점은 지구의 유한성·세대 간 윤리·생물보호다.

지구의 유한성이란 ‘지구의 생태계라고 하는 유한 공간에서는 원칙으로 모든 행위는 다른 사람에게로의 위해의 가능성을 가지므로 윤리적 통제 아래에서 두어져야 하는 것’이라고 하는 주장으로 연결 된다.

이것은 자원은 무한하며 경제활동은 인간의 자유의사에 맡겨 두면 ‘신이 보지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화적인 균형에 이른다고 하는 아담 스미스류의 졸래 자유경제 발전의 시스템과 대립하는 주장이다.

또 세대 간 윤리란 ‘미래 세대의 생존 조건을 보증할 책임이 현재의 세대에 있다’라는 생각이다. 즉 지금 현재 존재하지 않는 우리들의 자손, 즉 손자 혹은 증손의 세대, 그러한 미래 세대의 권리나 이해까지도 현재 우리의 행동에 관한 고찰에 포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화석연료의 사용과 대기오염을 예로 생각해 보면 현재 우리는 필요한 에너지의 대부분을 염가로 비교적 안전한 화석연료에 의지하고 있다. 그 편리성을 크게 향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산화탄소를 시작으로 하는 대기오렴의 운인이 되는 물질을 계속 배출해 왔다. 어느 계산에 의하면 현재 전 세계의 연가 에너지 소비량은 석유 환산으로 600억 배럴 정도이지만, 20세기 초두에는 약 37억 배럴밖에 사용하지 않았었다. 1세기에 에너지 소비량은 거의 16배가 된 것이다.

화석연료가 언제 고갈하는지는 어려운 문제이다. 석유 등은 계속 앞으로 40년이면 고갈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아직 분명하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고갈한다는 것이다.

또 우리가 지금까지 사용한 화석연료의 원인으로 확실히 지구의 환경이 악화되고 있다. 이산화탄소가 지구 온난화의 직접적인 원인일지 어떨지는 논의가 나뉘고 있지만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량은 산업혁명 당시와 비교해도 확실히 증가하고 있다.

미래 시대는 현재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과 교섭할 수 없다.

지금까지 인류가 가져 온 정치의 시스템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교섭 상대가 눈앞에, 혹은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었으므로 그들과 자신들의 이해를 기브앤드 테이크의 관계나 혹은 다양한 네고시에이션(Negotiation)을 통해 서로 합의점에 이를 수가 있었다.

그런데 미래세대, 즉 아직 탄생하지 않은 자손들은 네고시에이션을 할 수 없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미래 세대의 권리를 지키는 윤리적인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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