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이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는 유언을 남기시고 우리 곁을 떠나셨다.

이에 발 빠른 정부 관계자는 한국 천주교 사상 첫 추기경으로서 고인의 사회적 비중과 종교적 상징성 등을 고려할 때 기념관 건립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경북 군위군은 한발 앞서서 김수환 추기경 추모공원을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서 이미 33만㎡ 터를 매입해 둔 상태이며 앞으로 5년간 300억원의 예산을 들여 공원 조성에 나설 예정이라고 한다. 군위군은 김수환 추기경이 4살 무렵부터 8년 동안 살던 집이 남아 있으므로 이 지역에 추모공원을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평생을 검소하고 하느님과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신 김수환 추기경을 기리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할 매우 고귀한 일이다.

그러나 추기경을 기리는 것이 꼭 수백억 짜리 공원을 만들어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할 일이다. 몇 만평의 부지에 건물을 짓고 주차장을 크게 하는 것이 우리가 할일은 아닌 것 같다.

2006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총장에 취임하자 반기문과 작은 관계라도 있는 자치단체들이 너도 나도 반기문 기념사업을 하겠다고 나섰다.

반기문 사무총장이 태어난 음성군은 138억 원을 들여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생가마을 정비사업’과 반기문 평화 축제를 계획하고 있고 충주시도 충주에서 초·중·고를 다녔다는 이유로 수백억원을 들여 반기문 테마파크를 조성하겠다고 했다.

정칟종교 등의 역사적인 지도자나 인물을 기리는 사업은 국민 교육 차원에서 강조돼야 한다.

이를 위해 생가를 복원하고 발자취를 남기는 것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커다란 교훈이 될 수 있고 소외되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수백억 원을 들여 건물만 지어 놓는 기념사업으로는 이러한 기능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념사업은 대부분 기념관 하나로 건립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기 일쑤다. 그러나 우리가 존경하고 삶에 귀감이 될 수 있는 지도자를 단지 테마파크 안에만 모셔두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진정한 기념사업이란 그의 체취가 남아있는 모든 곳에서 우리가 볼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훌륭한 지도자의 사상과 철학, 이념과 삶의 자세는 지속적인 연구의 대상이 되고 새로운 시대에 적합하게 재해석돼야 할 것이다.

인도는 그들의 영웅인 간디를 위한 연구소를 설립했고 그곳에서는 간디의 철학과 사상에 대한 연구결과를 책으로 발간하고 모든 국민이 읽을 수 있도록 일반책의 10분의 1정도의 가격으로 보급하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은 추기경이 아닌 평신부와 같은 장례를 원하셨다. 추기경의 유언은 장례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죽은 뒤까지도 포괄해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된다.

자칫 추기경에 대한 기념사업이 추기경의 뜻과 어긋나게 추진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천주교 서울 대교구는 김수환 추기경의 유언의 뜻을 받아 ‘감사·사’ 운동을 펼친다고 한다.

서울대교구의 각 성당에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고 쓴 펼침막을 게시하고 같은 내용의 스티커를 제작해 배포할 것”이라고 밝혔다. 추기경의 삶을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운동이다.

그러면서 “추모관이나 기념관 신축은 간소하고 검소하게 산 고인의 뜻에 맞지 않다는 것이 신부들의 일반적인 견해”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진정한 추모나 기념사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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