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미 영 아동문학가

휘몰아치는 순간에도
바짝 정신을 차리고
잊지 않았어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때가 왔을 때
난 꼭 붙들고 놓지 않았어

주말에 덕유산엘 갔다. 무주 리조트에 있는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과 향적봉의 눈꽃을 보는 것이 목적이었다. 고교동창네 명과 갔는데 1년에 두 번 비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곤돌라를 타고 산 아래에서 출발 할 때는 인공눈을 뿌린 스키장을 제외하곤 마른 산과 회색 깡마른 나무들이 가득한 숲을 볼 수 있었다. 설천봉에 다다른다고 생각할 즈음 산엔 하얗게 눈이 보이기 시작했다. 곤돌라 하차장에 도착해서 밖으로 나오자 사방은 눈 천지였다. 인공눈이 아니다. 그 곳에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꿈처럼 행복하게 서 있었다.

대부분 눈꽃을 보기 위해 온 사람들이다. 설천봉을 출발해 눈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발 한발 내 디디는 발걸음마다 갑자기 온통 잡념으로 복잡해졌다. 아주 많이 복잡해졌다. 오래전에 계획된 여행이었기에 현재의 상황은 생각지 않고 다 잊으려고 온 여행인데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신중하게 조립하고 있던 레고나 퍼즐이 한 순간 막 뒤죽박죽된 기분이다. 그것은 마치 ‘딴 세상 같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아름다운 눈꽃나라를 보며 분명 딴 세상은 있다는 확신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또 하나는 교수를 꿈꾸던 한 남자의 꿈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은 탓이다. 그것이 꿈이었다는 것을 눈꽃 앞에서 분명히 알게 된 탓이다. 꿈과 목표는 다르다. 단 몇 줄의 시로 말할 수는 없지만 눈이 눈꽃으로 남을 확률에 도전하는 몸짓보다 더 하찮은 것이 인간이 꿈을 정하고 그것을 이루겠다고 하는 노력이라고 생각됐다. 사람들은 막연히 꿈을 정하고 그것을 향해 간다. 마치 갈 수 없는 길을 가는 사람처럼.

사람은 무엇을 위해 무엇으로 사는가? 어쩌면 혼돈 속에서 벗어나려고 사는 것이 아닌가? 이제까지 존재하는 모든 세상을 살아보고야 답을 얻어낼 수 있는, 아니면 답조차 얻을 수 없는 혼돈 속에 던져진 심부름꾼이 아닐까? 아 헛되도다. 부질없는 발걸음이 부끄러웠다. 눈부신 눈꽃의 시선 앞에서 산을 오르는 나는 자꾸 작아졌다.

그렇게 목적지인 향적봉에 올랐을 때 하늘은 파랗고 공기는 맑았다. 또 하나의 딴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서 다시 혼돈을 추스르고 마음을 다스리며 내려오기 까지는 좀 시간이 필요했다.

작아졌던 나는 조금씩 제자리를 찾았다. 순간적인 혼돈으로 괴로웠던 마음을 가다듬고 산을 내려오며 다시 현실로 돌아가 혼돈을 정비하는 심부름꾼으로 살더라도 내 목표를 붙들고 매일 전진해야 한다는 각오를 새롭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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