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8대 황제 도광제는 중국 역사상 가장 검소했던 임금이다. 호방한 성품에 학문을 좋아했으나 대국의 황제답지 않게 돈에 있어서만은 한 푼을 허투루 낭비하는 일이 없었다.

괜한 연회나 유흥을 악덕이라 생각한 그가 궁 안에서 아리따운 비빈들과 했던 일은 장작과 쌀, 기름, 소금 같은 살림살이 얘기였다. 황제가 이리도 쩨쩨하니 우선 죽을 맛이었던 것은 후궁들이었다. 황후의 궁에 들인 집기도 낡아빠져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형편인지라 비빈들은 감히 새 옷을 짓거나 치장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역람전현국여가(歷覽前賢國與家), 성유근검패유사(成由勤儉敗由奢): 이전의 나라와 집안을 살펴보니, 성공은 근검에서 나왔고, 실패는 사치에서 나왔다를 입에 달고 사는 황제의 눈에 들기 위해 대신들은 하나같이 헤져서 기운 관복을 입었다. 이 판에 헌 옷 가게들이 톡톡히 특수를 누려 낡은 옷 한 벌 값이 새 옷 두벌 값보다 비싸게 팔리는 기이한 현상까지 생겼다.

아까워서 어찌 먹나

헌 옷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자 형편이 넉넉지 못한 관리들은 새 옷에 일부러 오물을 묻히고 구멍을 내서 기워 입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군신이 다투어 누더기를 걸치고 대전에서 나섰으니 그 꼴이 참으로 가관이어서 양쪽에 도열한 대신들은 거지 떼와 같고 황제는 거지 왕초와 같았다는 우스운 기록에 허리를 꺾게 된다.

황제가 벌벌 떠는 것은 입성뿐이 아니었다. 먹는 음식도 일일이 참견을 했는데 공신들에게 베푸는 연회상조차 인색하기 짝이 없었다. 대학사 장령이 신강지역을 평정하고 역적의 괴수 장격이람을 북경으로 압송했을 때 도광제는 공을 치하하는 연회를 친히 열었는데 음식의 태반이 남은 채 잔치가 끝났다. 차려진 음식의 양이 너무 적어서 눈치를 보느라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광제는 이렇게 한심한 상 앞에서 대신들과 정치와 시를 논했고, 흥이 나자 연석으로 시를 짓기 시작하여 80구의 칠언고시를 지었으며 군신 간의 여흥을 묘사한 그림인 군신동락 한 폭도 남겼다. 한나절을 맨 입으로 즐겁게(?)보내다 흩어진 진기한 연회로 그 명성이 자자할 만하다.

역사학자 채동번은 ‘헛되이 그 말(末)에 주의를 기울이다가, 그 본(本)을 다스리지 못했다’는 말로 도광제를 평가했다. 의복을 아끼고 음식을 줄이는 행위는 집안을 다스리기에는 충분하나 나라를 다스리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그의 평에 수긍이 간다. 결과적으로 도광제의 쫀쫀함은 목전에서 아부하는 자들만을 키워 청황조의 힘을 약화시켰다.

도광제의 근검이 유달리 신기하게 여겨지는 까닭은 중국황실의 화려한 음식문화 전통과 대조돼서다. 특히 청대는 중국요리 최고의 부흥기로 꼽히는데 만족과 한족 요리의 정수를 통합한 황제의 만한전석(滿韓全席:만한취안시)은 호사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대연회식으로 유명하다. 

잔치를 위해 하늘과 바다, 땅에서 얻은 재료 중 각각 여덟 가지 진귀한 요리를 가려 상을 차렸다. 붉은 제비, 백조, 비룡(들꿩), 메추라기 등의 조류와 제비집, 상어지느러미, 검은 해삼, 물고기 부레, 전복으로 이루어진 해산물, 낙타 혹 곰발바닥, 원숭이골, 성성이 입술, 표범의 태반, 코뿔소 꼬리, 사슴 힘줄 등의 육류, 원숭이머리버섯, 흰참나무버섯, 죽순, 그물주름버섯, 표고버섯 등의 야채류가 만한전석에 올랐다.

통 큰 중국문화에 말 잃어

하루 두 번씩 사흘에 걸쳐 후식까지 모두 180 종류의 요리가 나오는 엄청난 규모의 상차림이다. 만한전석에 비하면 식전 전채요리 수준이지만 서양인들이 최고로 치는 3대 진미가 철갑상어알 젓인 캐비어(caviar), 거위의 간 푸아그라(foie gras) 그리고 송로(松露)버섯이라고도 부르는 트뤼플(Truffle)이다.

순수한 자연산으로 희소성 탓에 보석처럼 여겨지는 트뤼플의 경매가 지난 주 마카오와 로마, 런던, 아부다비에서 동시에 위성생방송으로 진행됐다. 돌멩이나 흙덩이처럼 생긴 트뤼플은 늦가을 개나 돼지의 후각을 이용해 땅속에서 채취한다. 이탈리아의 모리세에서 채취한 흰 송로버섯은 사상 최대 크기로 무게가 1.08kg에 달했는데 지난해에도 33만 달러에 송로버섯을 구입했던 마카오의 카지노 재벌 스탠리 호에게 20만 달러로 낙찰됐다. 1kg에 3억인 ‘억’소리 터지는 엄청난 가격이지만 금융위기 여파로 인한 낮은 시세였다니 기가 죽는 뉴스다. 게다가 강판에 갈아 샐러드 위에 뿌려 먹는 버섯 한 덩이를 위해 몇 억을 선선히 쓰는 사람이 중국인이란 예사롭지 않은 사실이 더욱 말문을 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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