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5일 한국공예관 초대전 작가 이종국씨

남부럽지 않게 살 수도 있었건만 모든 걸 버리고 자연인으로 귀화한 사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수지가 맞지 않아 하려는 사람 없어 맥이 끊긴 전통 한지 제작에 뛰어들고 고생 끝에 결실을 본 사람. 한 살 배기 아들이 도랑에 빠져 울던 때도 지켜보기만 할 정도로,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혼자 힘으로 해결하도록 하고 자연 속에서 스스로 깨우치게 하려는 사람.
청원군 청남대를 지나 이리저리 굽은 숲길을 돌고 돌다 보면 막바지에서 볼 수 있는 한지체험마을인 벌랏마을에서 한지체험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종국 작가(46)의 얘기다. 내달 5일부터 청주시한국공예관에서 열리는 ‘충북의 젊은 작가 초대전Ⅰ - 이종국 한지작품전’의 주인공 이 작가를 만났다.

청주한국공예관 전시에 앞서 작가는 지난 20일부터 26일까지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자연 속에서 살며 한지 제작에 매진해 오다 가진 첫 번째 개인전이다. 한국공예관에서의 전시는 그 연장선이다.

“자연과 같이 하는 생활에 가치를 두고 살아왔기 때문에 작품 전시 활동은 생각하지 않고 있었어요.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포만감이 듭니다. 이제는 내 놔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괴산 출생인 그는 청주대학교 미술교육과(한국화)를 졸업하고 청주에서 미대 입시 학원을 운영했다. 학원이 잘 돼 돈도 벌만큼 벌었다. 하지만 그림보다 입시에 치중하는 현실이 싫었던 그는 학원을 접었다. 그러다가 한지로 유명했던 벌랏마을에서 더 이상 한지가 나오지 않는 다는 소리를 듣고 1997년 그 곳에 들어갔다.

골짜기마다 밭이 많아 벌랏이라 불리는 벌랏마을은 1980년 대청호가 만들어지면서 차 한 대 다닐 수 있는 외길이 뚫리기 전까진 나룻배로 강을 건너 대전 쪽으로 나가야 했던 육지 속 섬이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지를 만들어 팔았으며 보리로 1천 냥, 감으로 1천 냥, 한지로 1천 냥씩 가구 당 3천 냥을 벌었다 해 3천냥 마을이라 불리기도 했을 정도로 부촌이었으나 30여 년 전부터 새마을운동과 주택 개량으로 한지 수요가 없어지고, 감과 보리도 수지가 맞지 않게 되자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기 시작하면서 옛 명성은 퇴락했다.

“종이 만드는 사람은 만들기만 할 줄 알고, 쓰는 사람은 사다 쓸 줄만 알다 보니 그렇게 된 게 아닐까요. 만드는 사람이라고 해도 종이가 팔리는 시장을 알아야 하고 쓰는 사람 역시도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아야 제대로 된 환경이 되지 않겠습니까.”

벌랏마을에 가기 전 강원도 정선 산골에서 1년 반 가량 자연과 하나 돼 살아가는 법을 익혔던 그는 이 마을에서 두메 산골 생활이 그 자체로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어르신들과 만나 얘기를 나누다 보면 느끼는 게 많아요. 시골 사람들은 봄이면 논·밭에 드로잉을 합니다. 논·밭 가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면 얼마나 아름답고 마음이 편해지는 지 몰라요. 짚으로 엮은 지붕은 처음엔 거칠죠. 여기저기 튀어나오고. 하지만 겨우내 눈을 맞고 난 뒤 녹으면 눈 때문에 저절로 정돈이 돼 말끔해져요. 생활 자체가 예술이에요.”

남의 밭을 빌려 포크레인으로 갈고 야생 닥나무를 캐다 심으며 전통 한지 제조에 착수한 그였지만 열정 하나로 만들어질 만큼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갖은 고생을 하다 3년여 뒤 종이가 완성됐을 때의 희열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쇠락해 가던 벌랏마을은 작가의 열의 덕에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2006년 초 한지체험마을로 지정되면서 이 작가는 한지체험위원장을 맡게 됐다.

작가는 한지 만드는 데만 그치지 않고 닥나무 줄기 등을 사용해 등(燈)·부채 등도 만든다. 한지 위에 한국화를 그릴 때도 닥나무로 만든 닥풀을 사용한다.

“한지만 팔아서는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공예품도 만들었죠. 등(燈)을 만들 때의 경우 불을 껐을 때도 회화의 느낌이 나도록 작업했어요. 감물·콩물 등 천연 재료만 사용했죠. 현재 종이 시장에서 한지 흐름은 왜곡돼 있습니다. 약품을 써서 화사하게 만드는 게 한지가 아니거든요.”

그의 곁에는 5년 전부터 항상 함께 하는 아내 이경옥씨(47)가 있다. 이씨는 20대 초반부터 세계를 다니며 요가와 명상을 배웠고, 의식개발 프로그램인 ‘아바타 코스’ 마스터이자 명상가다.

두메 산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이씨가 작가와 부부의 연을 맺은 사연은 작가의 삶만큼이나 드라마틱하다.

이씨는 이 작가가 손을 본 서울 한 요가원의 선방에 우연히 갔다가 거기에 매료됐고, 이걸 꾸민 게 누구냐는 물음에 그 요가원 원장은 산골 노총각이 해 줬다고 답했다. 그 뒤 명상을 할 집을 물색하던 이씨는 대청호 산골에 사는 노총각의 집에 한 번 가보라는 말을 듣는다. 직감적으로 그가 원장이 말해 준 그 사람일 거라 생각한 이씨는 벌랏마을로 찾아왔고, 그렇게 작가와 이씨는 만났다.

도반으로서의 만남을 갖던 두 사람은 결국 5년 전 결혼했고 지금은 아들 선우군(4)이 이들 부부와 함께 살고 있다.

“서울 전시에서 작품을 구매하겠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초기와 달리 지금은 좋은 식구들을 만나면 더 크게 할 수 있는 환경이 됐기 때문에 인근 폐교를 활용해서 보다 규모 있게 한지 작업을 하고 싶어요. 한지공예가로서 실질적으로 첫 개인전인 서울과 청주 전시에 이어서 앞으로 지속적으로 전시회를 가지려고 합니다. 한국 뿐 아니라 외국에서도요.”
한국공예관의 ‘이종국 한지작품전’은 같은 달 18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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