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족들은 제천에 사시는 부모님 집에서 한해 두 번의 차례와 두 번의 제사를 지낸다.

차례는 설과 추석에 지내고 5월에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제사를, 11월에는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의 제사를 지낸다. 차례도 지내고 제사도 지내지만 성묘는 하지 않는다. 묘가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태어나신 곳은 평양의 동쪽에 접한 평안남도 강동군이다.

아버지는 강동군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큰아버지, 그리고 누이동생들과 함께 사셨다.

할아버지의 별명은 천명(天命)인데 동네사람 대부분을 죽게 만든 전염병속에서 살아나셨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라고 한다.

큰어머니는 아이 낳다가 돌아가셔서 큰아버지는 홀아비였다.

중국군의 참전으로 유엔군이 다시 밀리는 1951년에 20대 초반인 아버지는 혼자 북한을 벗어난 이후 한국에서 이곳저곳 사시다가 제천에 정착해 어머니와 결혼하셨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결혼한지 몇년 후에 어머니는 이상한 꿈을 꾸셨다.

꿈속에서 큰아버지(어머니에게 시아주버니)가 ‘내 제사는 안 지내도 좋은데 부모님제사를 모셔달라’고 하셨단다.

그 꿈이 괴이해서 어머니는 역술인을 찾았고 그때 이후 역술인이 알려준 날에 제사를 지내왔다.

내게는 아버지 쪽의 친척이 두분 계셨다.

한분은 북한에서 아버지랑 한 고향에 사셨던 아버지의 4촌 매형인데, 아버지의 4촌누이를 북한에 남겨둔 채 혼자 월남하셔서 다른 여자와 결혼하셨다. 그들 부부를 고모, 고모부라 부르며 살았는데 지금은 두분 모두 돌아가셨다.

이제 아버지도 나이가 드셔서인지 명절이나 제사때는 고향과 가족이 그리운 티를 내신다.

내 아버지 같은 이산 1세대의 혈연에 대한 그리움 해소가 통일의 첫째 목적이다.

통일을 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남북한 백성 모두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고 풍요를 누리며 국가의 힘이 커질 가능성이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 외에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이 개방되면 김정일 독재정권이 몰락하게 되고, 결국 독재자의 죽음으로 귀결되기에 김정일 정권이 유지되는 한 통일은 불가능하다.

김정일이 죽은 후에 새로이 들어선 정권이 김일성과 김정일을 격하시키며 개방정책으로 전환했을 때, 그 때나 통일 논의가 이뤄질 것이다.

그 때까지 아버님이 살아계실까.

이산 1세대들은 이제 기다릴 시간이 별로 없다.

마치 김정일이 베풀듯이 간간히 추진되는 연간 300명 정도의 상봉으로는 120만 이산 1세대가 모두 상봉하는데 4천년이나 걸린다.

우리민족, 통일을 입에 달면서 북한 지원에 적극적인 세력들에게 묻고 싶다.

가슴 깊이 진정으로 통일을 바라는 이산 1세대의 아픔과 소망은 왜 배려하지 않는가.

대북지원과 남북회담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남북회담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는 판문점에 가족상봉면회소를 설치하고 대규모의상봉을 성사시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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