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청소년비율 30% 이하 정부지원금 중단
지자체·교육청 “예산 부족” 원론적 입장만 고수
일부 비영리단체 전환 등 살아남기 몸부림

   
 
  ▲ 무궁화 야간학교 학생들이 지난달 30일 오후 늦은 시간 청주대학교 학생문화회관 4층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정부가 매년 야간학교에 지원하고 있는 예산을 내년부터 중단한다고 공식발표하면서 저소득층 만학도들의 마지막 배움터인 야학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지역 교육당국과 자치단체들은 고민하는 모습은커녕 아무런 대안마련도 없이 ‘강 건너 불구경’식으로 일관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그 동안 정부의 쥐꼬리만 한 지원금에도 만족하며 근근이 명맥을 이어오던 야학들은 정부의 이번 예산 중단의 방침에 따라 비영리단체로 전환하거나 자신들의 딱한 처지를 이해해주는 대학교 또는 기업체 등을 찾아 도움을 받는 등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처절하다.

충청매일는 야학들이 처한 안타까운 현실을 짚어봤다. 정부가 야학에 대한 지원금을 중단한 배경과 함께 정규교육과정을 받지 못한 우리 이웃들이 앞으로 야학에서나마 마음 놓고 공부를 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지에 대해 알아봤다.

▶야학들에 대한 지원금 중단 배경

전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야학은 전국야학협회에 소속된 160여개를 포함해 400∼500여개로 추정된다.

야학에서 배우는 학생들은 한 곳당 40여명으로 이 같은 수치를 근거로 계산하면 전국에서 야학을 통해 교육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2만 여명에 달한다고 볼 수 있다.

충북도내에는 현재 청주지역에 5곳, 충주시 3곳, 제천시 2곳 등 모두 10곳의 야학이 운영되고 있으며 이곳에서 수업을 받는 학생들은 350여명이다.

하지만 이들은 정부의 비정규학교 예산지원중단 방침에 따라 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되는 야학이 벼랑 끝으로 몰리면서 배움의 길이 중단될 위기에 놓여있다.

국가청소년위원회는 지난해 야학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청소년의 비율이 수강생의 30%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2007년부터 지원금을 중단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올해 초 각 지자체에 전달했다.

다시 말해, 야학에서 배우는 학생들이 알려진 내용과는 달리 대부분이 중ㆍ장년층으로 청소년들의 교육에 지원금을 배정하겠다는 당초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충북지역 야학들은 그 동안 1곳당 연간 700만원을 매년 소재지 행정기관을 통해 청소년위원회의 지원금을 받아 근근이 명맥을 유지했다.

청소년위는 야학 학생 중 청소년 비율이 80% 이상을 넘으면 예전과 동일하게 지원금을 내주겠다고 조건을 걸고 있지만 충북지역 야학에서 청소년이 10% 이상을 넘는 곳은 단 1곳도 없다.

지민규 성암야간학교 교장(20ㆍ충북대 정치외교학과 1년)은 “청소년들의 경우 비제도권인 야학보다는 제도권에서도 얼마든지 공부할 기회가 많아 실질적으로 국가청소년위원회에서 내걸고 있는 청소년 모집활동이 불가능하다”며 “의무교육이 정착화 돼 있는 교육현실에서 청소년들만을 위한 야학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강한 불만을 토해냈다.

▶존폐위기에 몰린 야학들의 몸부림

충북지역 야학뿐만 아니라 전국의 대부분 야학들은 정부의 지원금과 교사들이 푼푼이 모은 운영자금, 외부 후원금 등으로 운영하고 있다.

규모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게 1년 운영예산은 1천만원 정도로 이 중 건물 임대료와 각종 공과금으로 80% 이상을 제출하고 있다.

청소년위가 각 지자체를 통해 해마다 야학에 지원해 준 금액은 700만원으로 야학 1년 운영자금의 70%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크다.

이 때문에 정부가 지원금을 끊는다는 것은 즉, 야학을 말살시키겠다는 의도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게 야학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야학 운영비의 상당부분을 지원금에 의존해 온 야학들은 당장 2007년부터 운영에 큰 차질을 빚게 됐다.

야학들이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후원의 밤’을 열거나 수십 년을 이어온 순수봉사단체에서 비영리민간단체로 전환하는 뼈를 깎는 아픔을 겪는 등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처절하다.     

지난해 30주년을 맞은 무궁화야간학교(교장 김정실ㆍ여ㆍ20ㆍ청주대 행정도시계획학부 1년)는 최근 청주농업고등학교 인근에서 청주대학교 학생문화회관 4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 교장은 “운영자금의 40% 가량을 차지하는 교실 임차료가 들지 않아 우선 한숨을 돌린 상태”라며 “교사들이 학생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계발은 뒤로 한 채 운영자금 마련에만 치중하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심지야간학교(교장 김아람ㆍ27ㆍ여ㆍ방통대 가정과 3년)는 지원금 중단 소식을 접하고 발 빠르게 움직여 지난달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했다.

대학생 순수봉사단체에서 출발한 역사와 전통을 뒤로 한 채 비영리민간단체로 전환, 선배들의 질타가 불을 보 듯 뻔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길밖에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김 교장은 “비영리민간단체로 전환하면 행정기관에서 보조금 형식으로 운영자금을 지원해 주는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어 고민 끝에 결행했다”며 “현재 충북도에 1천만원 상당의 운영자금을 받기 위해 사업계획서를 제출해 놓은 상태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성암야학(교장 지민규ㆍ20ㆍ충북대 정치외교학과 1년)도 최근 무궁화야학이 청주대학교 측의 배려로 교실을 확보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충북대학교 총장에게 야학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할 예정이다.

이처럼 충북지역 야학들이 저마다의 자구책을 내놓으며 처절한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사회의 외면 속에 이들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

▶지자체, 교육청의 무관심

국가청소년위원회는 2007년부터 지원금을 끊더라도 지방자치단체나 지방교육청 차원의 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충북지역 야학들이 바라보는 시각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지원금과는 별도로 학생들의 복지향상과 교육 프로그램 계발 등 다양한 활동을 위한 지원금을 지속적으로 지자체 등에 요청했지만 번번이 홀대를 당하고 있다는 게 야학 교사들의 불만이다.

청주시평생학습지원센터는 2006년 교육인적자원부가 공모 사업으로 시행한 ‘성인문해 교육프로그램’에 선정돼 받은 국비 3천만원과 시비 9만원을 들여 ‘성인 한글학교’를 운영했다. 이 사업은 사회적ㆍ경제적 이유로 교육의 기회를 놓친 시민들을 위해 마련된 제도로 청주지역 야간학교 4곳과 사회교육센터 1곳 등 모두 5곳에 예산이 투입됐다.

하지만 이 사업비는 야학들의 실질적인 어려움을 타개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성격의 지원금이다. 교재비 등 수업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곳에만 사용할 수 있어 건물 임대료 등 야학 운영비에는 전혀 활용할 수 없게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사업비는 공모라는 특성상 매년 지자체에서 지원금을 확보할 수 없고 교육인적자원부에서도 이 사업을 해마다 전개한다는 보장이 없어 야학 측에서 볼 때는 그리 반갑지 않은 제도다. 

충북도교육청도 매년 비정규교육시설인 도내 10곳의 야학에 운영비 2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이 지원금은 시 예산과는 달리 건물 임대료 등 야학 운영자금으로 100% 활용할 수 있지만 운영비라고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야학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교육청 입장에서는 지원금을 많이 주면 좋겠지만 현실적인 예산문제에 부딪혀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 많다”며 “비정규교육시설에 대한 지원금을 평생학습 차원으로 돌려 예산증액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고 밝혔다.

이처럼 지자체나 교육청 양측 기관의 입장은 예산 부족 등을 들어 원론적인 입장만 보이고 있다.

각종 지원금과 보조금이 범람하고 있는 현실에서 교육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할 양 기관이 고민하지 않고 오히려 성의 없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도내 야학들은 고사위기에 처해 있다.

안대균 무궁화야간학교 전 교장(27ㆍ청주대 법학과 4년)은 “야학에 대한 공무원들의 인식전환이 우선돼야 한다”며 “야학은 그저 대학생들이 모여 소꿉놀이를 하는 곳이 아니라 교육의 기회를 놓친 시민들에게 학습의 기회를 제공해 더욱 나은 교육의 장을 만드는 신성한 곳이라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희망은 있다

무궁화야간학교는 청주대학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김윤배 청주대 총장이 야학의 딱한 사정을 듣고 교내 학생문화회관 4층에 동아리 방 5곳을 무상 임대해 줬기 때문이다.

김윤배 총장은 “청주대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무궁화야학에 대한 지원을 차츰 늘릴 계획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야학도 교육의 한 일부분으로 어려워진 야학을 대학교에서 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지역대학교들이 앞장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8평 남짓한 조그마한 공간이지만 더 이상 쫓겨 다니다시피 하는 이사의 설움에서 벗어난 지금의 현실이 야학 교사들은 그저 꿈만 같다.

만학도들은 꿈에도 그리던 교정을 걷는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고 야학들은 비싼 임대료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

야학 관계자들은 “대학교와 연계된 야학 운영이야 말로 가장 좋은 운영방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 때문인지 야학들은 교사들이 재학생인 점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등 대학교로의 ‘입성’을 위해 갖은 궁리와 묘책을 세우고 있다.

심지야간학교는 한 중소기업으로부터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정기탁을 통해 내년 한 해 동안 2회에 걸쳐 350만원씩 운영자금 700만원을 지원 받기로 했다.

송공석 와토스코리아(주) 대표(54ㆍ인천시 서구)는 “정부가 지원금을 끊어 심지야간학교가 어려움에 봉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금 결정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지정기탁의 경우 기부금 전액에 대해 세제공제를 받을 수 있어 기업체와 야학이 윈윈(win-win)할 수 있는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기업체와 농촌마을이 자매결연을 하는 1사1촌과 유사한 형태의 1사1교 방안도 새로운 대안으로 모색되고 있다.

이희정 충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국 주임은 “지정기탁의 경우 기업체들이 전액 세금 공제혜택을 볼 수 있어 선호하는 기부금 제도”라며 “야학도 이 같은 방식으로 향토기업체에서 기부금을 받아 운영하면 서로 이득이 될 수 있는 좋은 방안”이라고 전했다.

진재구 청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대학생들로 주축이 된 야학 교사들의 봉사의 순수성을 퇴색시키지 않고 의미를 이어가지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대학교와의 연계를 통한 자구책 마련이 가장 이상적인 방안”이라며 “건물 임대료가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현 상황에서 대학교 측에서 장소를 제공해 임대료 부담이라도 덜어주면 교육의 질적인 향상도 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