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하게 주는 것은 많이 주는 것이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길을 막고 구걸하는 동냥아치를 만났다. 주머니를 다 뒤졌으나 동전 한 푼 찾지 못했다. 미안한 표정으로 톨스토이는 말했다. “형제여, 노여워하지 마시오. 가진 것이 없소. 있었더라면 기쁘게 줬을 것이오” 그러자 그 거지는 얼굴에 희색을 띄면서 말했다. “내가 달라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나를 ‘형제’라고 불러 주셨으니까요.”

헨델은 음악가이면서 자선사업가 이기도 했다. 1742년 4월13일 화요일, 그의 나이 57세 때 그는 아일랜드에서의 그의 메시아 첫 번 공연 때의 수익 전액으로 빚을 못 갚아 옥에 갇힌 죄수 142명을 석방시켜 줬다. 문을 두드리며 조이는 자기의 빚쟁이도 많았는데 남의 급한 빚을 먼저 갚아 준 그는 참으로 욕심이 없었다. 그의 음악에 왜 감화력이 없겠는가. 그의 오라토리오(聖譚曲; 독창, 합창, 관현악이 등장하는 종교음악) ‘메시아’(Messiah)는 세계 음악사(音樂史)의 획을 긋는 합창곡으로 ‘할렐루야’가 연주 될 때에는 영국의 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해서 지금도 메시아 연주 중 ‘할렐루야’부분이 연주 될 때는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예의로 돼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아낌없이 주는 것 역시 참으로 많이 주는 것이다. 친절과 흔연(欣然), 이 두 가지는 주는 자를 복되게 하고 받는 자를 기쁘게 해주는 미덕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 된 사랑으로 베푸는 자가 복이 있는 사람이다. 오늘날 우리의 지구는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는 말에서 지구가족(global cottage)이라는 개념으로 바뀐 지 오래다. 안방에서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접하고, 세계의 모든 나라들의 사람들을 수 분만에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이 그 누구이든 간에 우리는 그들에게 친절과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지구 구석구석에서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매일 4~5만명씩 된다는 유엔(united nations)의 통계가 나왔는데도 아직도 전혀 굶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말은 없다. 가까이 우리의 동족 북한 땅은 아직도 얼어붙은 땅으로 남아있어서 자유도 없고, 먹을 양식이 부족해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그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우리가 얼마를 더 도와야 되는지 조차 알 길이 없는 답답하고 안타까운 형편이다. 우리가 항상 마음속으로 남을 위해 살기로 결심하고, 힘써 실천 하려고 노력 한다면 우리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 될 것이다. 미국 사회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은 항상 자기 자신만의 유익을 위해 살지 않고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사람들이었다. 록펠러는 미국의 석유 왕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는 부자라도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자선 사업을 하는데 쏟았다. 빌 게이츠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부자다. 그는 천문학적 액수의 재산을 사회사업에 희사했다.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주는 자가 행복한 사람이다. 진정한 행복은 남에게 베풀고 줌으로써 주어지는 것이다. 남에게 줄줄 모르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다. 항상 남에게 주고 베푸는 사람은 언제나 행복한 인생,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다. 성경은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갖고 누리고 살아도 ‘사랑’에 성공하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라는 말이다.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복된 사람이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는 말은 불변의 진리다. 주는 사람이 항상 받는 사람보다 즐겁고 행복한 법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누고 베푸는 세상을 만들어 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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