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내심 서운한 모양이다.

배추나 무 등 재료를 고르는 일에서 갖가지 김치 가짓수 정하는 일까지 올해도 발 빠른 큰누나가 일사천리로 주도해 갔다.

어느 해부터인가 우리 집 김장주도권은 큰누나 몫으로 넘어갔다.

지난 주말 우리 집은 김장을 했다.

배추만 200포기가 넘는, 요즘의 김장추세로는 보기 드문 대형 프로젝트인 셈인데 거기에는 잔가지처럼 퍼진 식솔들의 수도 한 몫을 했지만 남 퍼주는 성격 하나만큼은 쏙 빼 닮은 부녀간의 넉넉한 인심이 의기투합해 만든 결과이기도 한 것이다.

소설을 넘긴 초겨울의 날씨는 아늑하고 따사로웠다.

가족들이 겨울축제처럼 모두 모였다.

여기저기서 얘기꽃이 피어 올랐다.

날을 잘 잡았네, 배추가 실하고 고소하네 하며 분주히 손놀림을 돕다가는 “배추 속 무는 잘게 쓸어야지. 양념이 너무 빡빡하단다. 굴 너무 많이 넣으면 칼칼한 맛이 사라지느니라…” 하며 어머니는 곤궁했던 옛날 충청도식 김치 향수를 풀어놓다가, 양념 젓갈 아끼지 않는 요즘식 누나 취향과 간혹 맞부딪쳐 언쟁이 높아지기도 하는데 대개가 이미 주도권을 잃은 노쇠한 어머니가 늘 한발 물러나는 것이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여지없이 당신의 전성시대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우리 집 김장때는 점심밥을 한말이나 했단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오고 그것도 모자라서…”

“언제는 술에 잔뜩 취한 아무개가 한밤중에 일어나 김장독을 열고는 거기가 글쎄 변소인지 알고…” 하며 약간은 과장 된 듯한 도돌이표 어머니의 전설담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러면 그냥 넘어가도 될 것을 눈치 없는 젊은 며느리는 꼭 토를 달며 묻는 것이다.

“아유 어머니 한말 밥을 하면 그게 얼마나 많은데 그걸…”

“그 해 김치는 다 버렸겠네요?”

그 옛날 김장하는 날은 정말 신이 났다.

마당 한 켠에 걸린 쇠 소두방에서는 고소한 들기름 냄새와 함께 묽은 메밀반죽에 절인 배추전이 노릇노릇 익어가고 아낙들 사이를 오가며 얻어먹던 양념 둘둘 말은 절인 배추며, 김장이 끝날 때쯤 남은 배추부스러기에 양념 듬뿍 넣어 무쳐내는 겉절이에서는 상큼한 생강 냄새가 입안 가득 맴돌고….

김창철이면 내 집 김치보다 남의 집 김장 겉절이가 밥상에 더 많이 오르는 동네 인심에 한동안 김치겉절이 콘테스트가 열려, 아무개네 것은 어떻고 하며 행복한 밥상머리에서 점수를 매기는데 늘 1등은 볼 것도 없이 집집마다 항상 우리집표 김치였던 것이다.

이틀에 걸친 우리 집 김장은 저녁나절이 돼서야 끝이 났다.

어머니는 그래도 서운하셨는지 큰누나 눈치를 보며 한마디 더 덧붙이셨다.

‘올해는 깍두기를 꼭 할려구 했는디…”

그러고 보니 예전보다 우리 집 김치 가짓수가 많이 줄어 든 게 분명하다.

‘고들빼기’도 ‘백김캄도 안 보이고 조선배추이파리로 양념 없이 담가먹던 씁쓰름한 막김치도 사라졌다.

그래도 어머니는 김장 전에 서둘러 담가놓은 동치미와 무청김치를 우리집표 김치 목록에 올린 것을 그나마 다행스러워하시는 눈치다.

그 많던 김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해가 갈수록 우리 집 김칫수도 자꾸만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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