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 일간지에 실린 문화면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요즘 영상매체의 발달이 문학의 위기를 부른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마당에 그 위기의 문학작품에 사랑이라는 소재가 사라질 조짐을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문단의 화제가 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은 더 이상 사랑이 전부인 소설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랑은 문학작품의 영원한 화두이고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세대의 사람으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내용이었다.

이를 두고 이번에 첫 소설집을 낸 김중혁 작가는 “타인에 대한 사랑보다 자기애가 커진 개인화한 요즘사람들의 모습이 소설 속에 스며들기도 했겠고, 연애로 담아내기에는 사회가 낭만적이지 않은 것 과도 관계가 있지 않을까” 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그의 첫 소설집 ‘펭귄뉴스’속에서 자전거, 라디오, 지도 등 오래된 것을 사랑하고 숭배한다. 마치 정신의 사물화라고나 할까. 그렇지 않아도 세상은 물신풍조가 만연해지고 있다.

정보 산업사회로 발전하면서 우리가 치러야 할 희생양으로 사랑을 포기하기엔 사랑이라는 존재는 너무도 고귀한 존재다. 도대체 사랑이 없는 가정, 직장, 사회, 도시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물 한방울 나오지 않는 사막에서 세상에 없는 존귀한 물건을 잔뜩 쌓아놓고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과 같다.

어차피 소설은 허구의 세계다. 그러나 그 허구의 세계를 그려나가는 작가들이 독창성이라는 허울좋은 명목으로 엽기적인 작품을 쓰거나 잠시 잠깐 독자들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작품에 열중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한때의 유행은 결코 세월이라는 풍랑을 견뎌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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