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문신이요 학자인 퇴계 이황(1501∼1570)이 48세 되던 해에 온 곳이 단양군이었다. 퇴계는 수려한 단양의 절경을 보고 감탄하며 그 중 도담삼봉, 석문, 구담봉, 옥순봉, 사인암, 하선암, 중선암, 상선암 등 8경을 정해 단양의 아름다움을 알리려 했다.

이후 단양군에서는 단양 8경에 견줄만한 북벽, 온달산성, 다리안산, 칠성암, 일광굴, 금수산, 죽령폭포, 구봉팔문 등 8경을‘단양 2팔경’이라 명칭을 정하고 또다른 관광 명소로서 소개하고 있다. 단양 8경에 묻혀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단양 2팔경을 2회에 걸쳐 살펴본다.

/ 편집자

단양 2팔경은 빼어난 산수와 맑은 공기로 답답한 도심에서 숨막히듯 전쟁을 치르는 이들에게 휴식을 전해주고 있다. 단양 2팔경 중 북벽, 온달산성, 다리안산을 먼저 둘러보자.


- 병풍처럼 깎아지른 성벽 -

#북벽
도도히 흐르는 남한강가에 깎아지는 듯한 석벽이 병풍처럼 늘어 서있어 장관을 이루며 봄가을의 철쭉과 단풍이 그 풍광을 더해 준다.

영춘면의 북쪽에 있으며 당시의 태수 이보상이 벽면에‘북벽’이라 대서특각해 지금까지 불리어 오고 있다.

고단한 삶에 지쳤을 때 넓고 풍요로운 석벽을 안고 돌면서 웅장한 자연의 품안에서 선유하는 풍유는 생의 또 다른 활력소를 얻기에 충분하다.


- 길이 972m짜리 사적 석성 -

#온달산성
온달산성은 남한강변의 해발 427m의 성산에 축성된 길이 972m, 높이 3m의 반월형 석성으로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으며 사적 제264호로 지정되어 있다.

온달산성의 지명과 전설에 의하면 영토확장 경쟁이 치열했던 삼국시대에 한강을 차지하기 위한 전초기지로서 고구려와 신라 사이에 영유권을 둘러싸고 전투가 치열했던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 바보온달 장군의 무용담과 함께 평강공주와의 사랑이야기가 전해오면서 붙여진 이름으로 성안에서 삼국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곳은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이루었다면 현재 중국의 양자강과 황하강 주변이 우리의 땅이 되었을 것이라는 역사적 회고와 바보 온달이 자기 수련의 노력을 통한 명장으로의 변신과 홀어머니에 대한 효행심 그리고 평강공주의 내조의 힘 등을 통하여 현대의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과 의미를 주는 유서 깊은 곳이다. 이러한 이유로 온달동굴과 더불어 학생들의 고적답사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 소백산잇는 '약속의 다리' -

#다리안산
소백산 비로봉에서 흘러내린 물이 우거진 숲과 기암절벽을 지나 다리안산에 이른다. 옛날 다리안산은 외부와의 접촉을 불허하던 곳이였다 하는데 1950년까지만 해도 소백산을 가자면 이곳에 있었던 계구교, 융탁교, 운제라고도 하는 다리를 건너야 했으며 이는 마음을 가다듬고 맑게하여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이다.

아주 옛날에 30여층계가 놓여져 있었고 박달나무를 달래넝쿨로 묶어서 만들었기에 사람이 겨우 건너고 마을의 큰 소는 건너지 못하여 다리안에서 죽어야만 했다고 한다.

현재 다리안산 국민관광지가 조성되었고 소백산 등산로가 개설되어 많은 피서객과 등산객들이 찾고 있다. 옛 사람들은 다리안과 밖을 죽음과 연계시켜 교량의 하중을 적게함으로서 많은 사람이 오래 지나 다니도록 행한“관습의 다리”라고 하며 “약속의 다리”가 있던 산이라고도 한다. 다음에는 경관이 더 아름다운 칠성암, 일광굴, 금수산, 죽령폭포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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