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속기록학 창안자 류승화씨 발견

정순철 작곡 국가 단위 공식 가요 2곡 77년 만에 확인
예산공립농업중학교 교지 1948년 신년판 제4호 실려
류씨 “충청매일 기사 보고 정순철의 중요성 알게 돼”

왼쪽부터 1948년에 발행된 예산공립농업중학교 신년판 교지 제4호 ‘학우’ 24쪽에 실린 ‘조선 올림픽 노래’ 악보. 김강곤 작곡가가 현대식으로 재현한 ‘조선 올림픽 노래’ 악보. 예산공립농업중학교 신년판 교지 제4호 목차(붉은색 테두리) 24쪽 ‘조선 올림픽 노래’.
왼쪽부터 1948년에 발행된 예산공립농업중학교 신년판 교지 제4호 ‘학우’ 24쪽에 실린 ‘조선 올림픽 노래’ 악보. 김강곤 작곡가가 현대식으로 재현한 ‘조선 올림픽 노래’ 악보. 예산공립농업중학교 신년판 교지 제4호 목차 24쪽 ‘조선 올림픽 노래’.

 

[충청매일 김정애 기자] 한국 동요의 초석을 다진 정순철(1901~1950?) 작곡의 미발견 악보 ‘조선 올림픽 노래’가 작곡된 지 77년 만에 충청매일의 특집기사를 계기로 발견됐다.

충청매일은 2022년 9월 18일부터 10월 25일까지 4회에 걸쳐 특집기획 ‘한국동요의 초석 정순철 재조명’기사를 다루었다. 지난해 말경 이 기사를 접한 독자 류승화(한국속기록학 창안자·사진)씨가 정순철의 미발견 악보 ‘조선 올림픽 노래’에 대해 제보하겠다고 알려 왔다.

‘조선 올림픽 노래’는 해방 직후 1946년 조선체육회가 의뢰해 정순철이 작곡하고 윤석중이 작사해 조선체육대회가(歌)로 사용됐던 곡으로 오늘날 ‘전국체육대회가’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경향신문에는 ‘이 노래 보급을 위해 3만 부를 관람객에 배포했고, 개막식 행사에서 이화여대 합창단의 합창으로 장내를 일층 더 장식했다’(경향, 1946.10.16.)는 기록이 있다.

‘대한체육회 100년사’에 따르면 이 노래는 ‘광복 첫돌을 기념해 1946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서울운동장에서 조선체육회가 주최하고 군정청 문교부가 후원한 제1회 조선올림픽대회에서 불렸던 곡이다. 이 대회에서 조선 올림픽 노래가 발표되었는데 태극기를 앞세우고 세계무대로 나아가고자 하는 민족의 갈망이 담겼다’고 전했다

이 노래는 정부 수립 후인 1949년 ‘조선체육대회’가 ‘전국체육대회’로 명칭이 바뀌면서 윤석중의 작사 중 가사 일부가 변형됐다. 후렴구 중 ‘우리 올림픽’이 ‘우리나라 체육대회’ 등으로 바뀐 것이다. 이와 함께 작곡자도 정순철에서 김순애 작곡의 ‘체육대회가(歌)’가 탄생했다.

이번에 ‘조선 올림픽 노래’ 악보가 발견되면서 정순철은 국가 단위의 공식 가요로 문교부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졸업식 노래’와 조선체육회 요청으로 만들어진 ‘조선 올림픽 노래’ 두 곡을 작곡했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당시 악보 3만부가 배포됐으나 대한체육회나 정순철 연구가들은 찾을 길이 없었다. 류승화씨의 제보로 77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고서적 수집가이자 경기도에 거주하는 류씨는 지난해 말 충청매일로 전화를 걸어 “특집기사 ‘한국동요의 초석 정순철 재조명’기사를 보고서야 작곡가 정순철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며 “‘조선 올림픽 노래’ 악보를 언젠가 한 고서점에서 보고 습관처럼 사진을 찍어 두었던 기억이 난다. 신문 내용에 꼭 찾아야 한다는 것을 보고 사진을 찾아 악보 상단 우측에 ‘정순철 곡, 윤석중 요’라고 쓴 것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기자와의 통화를 마친 류씨는 이후 그 악보를 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오래전 보았던 고서점을 찾아가 어렵게 사진 촬영했던 책을 구할 수 있었다.

류씨가 찾은 책은 충남 예산공립농업중학교에서 1948년에 발행된 신년판 제4호 교지이다. 이 학교는 6년제 중등학교였으나 1950년 예산농업고등학교, 1966년 예산농업고등전문학교로 승격, 1972년 국립으로 이관, 1974년 예산농업전문학교로 개편, 1979년 예산농업전문대학으로 승격되는 과정을 거쳐 1992년 3월 1일 공주대학교 산업과학대학으로 합병되었다.

1948년 2월 17일자로 발행된 이 학교 교지 월간 ‘학우’ 24쪽에 필사한 ‘조선 올림픽 노래’ 악보와 가사가 실려 있었다.

충청매일은 이 교지에 실린 악보를 전달받아 정순철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임기현(충북연구원 연구위원) 박사와 김강곤 작곡가에게 의뢰해 악보를 현대식으로 재현하고 직접 연주를 해보며 다른 정순철의 곡과 비교하는 등 확인절차를 거쳤다. 새롭게 발견된 악보에서 노래 제목은 ‘조선 올림픽의 노래’라고 표기됐으나 임기현 박사가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당시 언론에 보도된 각종 자료를 확인한 결과(경향신문 1946년, 10월 16일자 등) ‘조선 올림픽 노래’가 맞고 ‘의’는 불필요한 조사이기에 필사자가 임의로 표기한 것으로 보았다.

그 결과 이 악보가 정순철이 작곡한 악보라는 것을 규명하게 됐다.

임기현 박사는 “정순철의 여러 곡들을 발굴하고 찾는 과정에서 ‘조선 올림픽 노래’를 작곡해 조선올림픽대회에서 대회가로 불렀다는 기록은 수없이 많은데 정작 악보가 발견되지 않아 매우 안타까웠다”며 “충청매일의 특집기사를 계기로 77년간 묻혔던 악보가 최초로 발견돼 감개무량하다. 정순철 작곡의 현존 악보가 59곡에서 60곡으로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정순철 연구에 큰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순철을 단순히 동요 작곡가에 한정하지 않고 동요에서 일반 노래까지 그 층이 넓었던 작곡가로 연구돼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체육대회 노래가 1949년 왜 김순애곡으로 바뀌었는지, 그 과정에 대한 연구도 필요해 졌다”고 밝혔다.

그동안 정순철 곡을 연주하고 공연을 진행했던 김강곤 작곡가는 “‘조선 올림픽 노래’는 체육대회가(歌)에 걸맞은 씩씩한 행진곡풍이다. 우리 고유의 장단인 자진모리에 전통 리듬을 살린 삼분박의 음악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해방 후 첫 체육대회를 상징하는 만큼 힘이 많이 들어가 있으며 첫 부분의 가사 ‘떨치자’와 같이 대중을 향한 선언적인 의미를 담아 작곡했다”고 밝혔다.

정순철은 충북 옥천군 교평리에서 출생해 일제강점기 방정환, 홍난파 등과 함께 1920년대 한국 동요의 개척기와 1930년대의 황금기를 열어간 대표 작곡가다. 정순철은 색동회 회원으로서 천도교 소년회와 함께 다양한 어린이 운동을 전개해 아동문화 정착과 아동의 권리 신장에 이바지했다. 안타깝게도 한국전쟁기인 1950년 9월 납북, 실종됨으로써 작품활동 중단뿐만 아니라 그의 업적이 매몰되는 상황을 맞게 됐다.

충북도와 옥천군은 최근 정순철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정순철의 업적조명과 기념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김강곤 작곡가는 오는 3월 정순철 곡을 연주하는 음악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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