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나경원 전 의원이 지난 25일, 오는 3월 8일로 예정된 당 대표 선거에 나가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자격으로 ‘출산 시 부채 탕감 검토’ 발언을 하자, 대통령실이 공개 비판하고, 나 전 의원이 부위원장직을 그만두겠다고 하니까, 윤 대통령은 나 전 의원을 전격 해임하고, 윤핵관과 초선의원 50여명까지 나서서 전방위적으로 나 전 의원을 공격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지율까지 크게 떨어지자, 불출마를 결정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결정에 대해, 솔로몬의 재판에서 ‘진짜 엄마’의 심정으로 ‘용감하게’ 내려놓았다면서, “질서정연한 무기력함보다는 무질서한 생명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무질서한 생명력이 필요하다’는 말에는, 사회 안에 이념, 성, 재산, 신체나 정신 능력, 종교, 인종 등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있는 것에 대해, 그것이 사회에 특별히 해악을 끼치지 않는 한, 이를 인정하고, 배려하고, 보장하겠다는 뜻이 들어있다. 그런데 그가 몸담았던 정치세력은 다양성보다는 질서를 가장한 획일화를 주장해 왔고, 그 속에서 그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 세력의 주류에서 밀려나게 되니까, 뒤늦게 ‘무질서한 생명력’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일까? 그의 삶이 어땠는지를 떠나, ‘무질서한 생명력’의 가치는 나도 오래전부터 중요하게 여겨오던 것이라, 귀가 솔깃하기는 했다.

1999년 서울지검 남부지청(나중에 남부지검으로 승격)에 초임검사로 있을 때, 대검 간부가 ‘지도 방문’을 왔다. 그 간부는 지청장실 안에 있고, 지청장실 밖 긴 복도에 차장검사, 1~6부장검사, 평검사가 기수 순으로 길게 줄을 서서, 한 사람씩 안으로 들어가 대검 간부에게 “검사 000”라고 관등성명을 대고 악수하면서 허리를 숙였다. 자유, 평등이라는 최고의 헌법 가치를 수호해야 할 책무를 지고, 이를 위해 법으로 신분까지 보장된 검사 조직이, 군대 문화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행태를 보이는 풍경에 놀랐다.

그런 행태는 회식 자리에서도 있었다. 검사장이 하사하는 폭탄주를 한 사람씩 마시면서 ‘검사장을 찬양하는 폭탄사’를 읊었고, 검사장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이를 은근히 즐겼다. 회식이 끝나고, 검사장이 관용차에 타기 전, 부하검사들은 줄지어 선 채 허리 숙여 인사했다. 검사들은 이런 잘못된 문화를 비판하기보다, 그런 문화의 정점인 검사장이 되고자 했다.

윤 대통령은 제1야당, 노동조합을 좌익용공세력으로 치부하고,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사는 외국 순방 비행기에 태우지 않고 강제수사를 서슴지 않으며, 시민단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다. 외교적으로도 노골적으로 중국, 이란을 배척하고, 일본, 미국을 편든다. 그의 편협한 태도는 주로 개인적인 미성숙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오랜 기간 검찰의 권위적인 획일문화에 물든 탓도 크다. 그는 도무지 ‘무질서한 생명력’의 다양한 가치를 모른다.

2009년 검사를 그만두면서, 서울중앙지검 현관 앞 소나무들의 바깥 선을 깔끔하게 다듬은 것을 두고, 검사 게시판에, “거칠게 불규칙하던 소나무의 외곽은 아주 완만한 곡선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지만, 그 곡선을 미(美)라고 강요합니다”라고 썼다. ‘무질서한 생명력’은 여전히 내게 소중하고 아름다운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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