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부 명예교수

지난주에 158명이 사망하고 196명이 부상당한 이태원 참사를 수사한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사고 발생 76일 만에 수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조사결과 이태원 사고의 책임이 있다고 보는 23명을 검찰에 송치하는 것으로 514명이 투입된 특수본의 업무를 종료하였다. 이 논리라면 이태원 참사의 책임은 23명의 법적 책임으로 종료될 듯하다.

행정행위의 책임이란 행정기관이나 공무원이 국민의 기대와 희망, 공익 및 행정 관련 법령 등이 규정하는 행동기준에 따라 행동할 의무를 지는 것을 말한다. 행정기관이나 공무원이 져야 할 책임은 법적 책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음과 같은 책임을 생각하여야 한다.

첫째는 도덕적 책임으로 사회의 옳고 그름의 판단으로 책임 여부가 결정된다. 둘째는 법적 책임으로 법에 규정한 행동규범을 지켰는가에 의해서 판단되고 법의 규정에 의해서 처벌을 받게 된다. 셋째는 공무원의 직무와 관련된 책임으로 전문적인 기술과 능력 및 조직 관리상으로 준수해야 할 의무이다. 마지막으로 대응적 책임으로 행정기관 및 공무원은 국민이나 사회의 요구에 대응할 의무를 진다.

특수본의 발표에 대하여 야당, 유가족이나 여론은 셀프수사에 의해서 꼬리 자르기 수사,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윤희근 경찰청장 등 위선에 면죄부를 준 수사라는 비판을 하고 있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검찰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법적 책임만 이야기한다.

조선의 태종은 혹심한 가뭄 등으로 민심이 흉흉하자 백성에게 사죄하고 왕위를 물리고 함흥에 은둔하였다. 태종은 죽기 전에 세종에게 이르기를 ‘내가 죽어 넋이라도 살아 있다면 이날만은 기필코 비를 내리게 하리라’는 유언을 했고, 태종이 죽은 음력 5월 10일에 내리는 비를 태종우(太宗雨)라고 한다. 제왕으로 책임을 죽어서까지 지고자 한 마음을 볼 수가 있다. 

지도자란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정치인과 고위관료의 책임은 민주행정과 신뢰행정의 핵심을 구성한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지도자들의 책임지는 모습은 모든 면에서 부족하다. 특히 지도자들의 정치적, 도덕적 책임과 국민에 대한 대응적 책임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고, 법적 책임이 없으므로 정치적, 도덕적, 대응적 책임도 없다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참사에 대한 정치적 대응적 책임을 보여주고자 국정조사를 주도하는 야당의 자세도 문제이고, 이를 정치적으로만 받아드리는 집권당과 정부도 문제이다. 국정조사는 문제의 원인을 밝혀서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안전정책을 수립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나 정쟁의 장으로만 만들고 있을 뿐이다.

생텍쥐페리는 ‘사람이 사람이라는 사실은 곧 책임을 진다는 것을 말한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와 관련하여 우리 사회에는 사람이 없는 듯하다. 법과 처벌만 있고 책임지는 지도자가 없으니 사고가 반복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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