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서 1천채 넘는 빌라·오피스텔을 임대해 속칭 ‘빌라왕’이란 이름까지 붙여진 40대 임대업자 김씨가 지난해 갑자기 사망해 세입자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세입자 수백 명이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김씨가 사망한 지 두 달 가까이 지났는데 세입자들에 대한 대위 변제(보증 기관에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먼저 돌려준 뒤 임대인에게 회수하는 것)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통상 전세금 보증보험에 가입한 세입자는 보증금 반환을 거부하는 집주인에게 임대차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주택보증공사(HUG)는 이를 근거로 대위 변제 작업에 착수하는데 집주인이 사망한 탓에 세입자들이 ‘계약 해지’ 요건을 충족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로부터 불거진 전세사기의 갖가지 형태들이 서민들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을 무참히 빼앗으며 이에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김씨의 경우 2020년부터 죽기전까지 수도권 빌라와 오피스텔을 갭 투자(전세를 낀 매매) 방식으로 사들여서 자신이 소유한 주택이 1천139채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빌라왕 김씨와 같이 세금까지 체납한 악성 임대인이 2년 넘게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으며 부동산 거래를 계속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우리 부동산 관련 제도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전세사기가 극도의 사회악인 이유는 피해자들의 인생전체를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피해자 중 상당수가 사회초년생인 청년들이거나 신혼부부들이어서 전 재산을 빼앗기며 심각한 주거불안을 초래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못하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청년들이 결혼에 불안하고 신혼부부들은 출산을 미뤄 사회 전체적으로 혼란을 야기 시키므로 전세사기는 피싱이나 기획부동산과는 차원이 다른 사회적 악영향을 초래하기 때문에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과 개입이 요구되는 것이다.

대체로 전세사기는 먼저 소유주가 금융권 대출을 받으면서 선순위 근저당을 설정하고 주변보다 저렴한 전세금으로 세입자들을 유인하는 방법이다.

또 의심하는 세입자들에게는 악덕공인중개사들이 법적 효력이 없는 이행보증각서를 제공하며 안심시키는 수법이 사용된다. 전세사기범들이 활개를 칠 수 있었던 데는 우선적으로 정부 책임이 크다.

현행 법·제도의 허점이 전세사기의 배경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정부가 이미 상당한 피해자가 발생한 뒤에야 외양간 고치기에 나섰지만 서민들과 청년들의 인생을 감안해 빠르고 실효적인 대책 마련을 세워 인생을 통째로 빼앗기는 상황을 해결해 주길 기대한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전세사기는 서민 임차인들의 생계와 직결되는 매우 악질적인 범죄”라며 “2023년 새해는 전세사기 근절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밝힌 말에 희망을 걸어본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