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다시 추진키로 하면서 의료계와의 정면충돌이 우려되고 있다. 코로나19 유행이 안정세로 접어든 데 따라 2년 전 논의하다 멈춘 의료인력 충원 문제를 꺼내든 것인데 의료계의 반응은 벌써부터 민감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9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2023년도 업무추진 계획을 보고하면서 의대 정원 증원 추진을 공식화했다. 복지부는 최근 일부 대학병원에서 진료중단 사태까지 빚은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다.

필수의료 공백은 오래전부터 불거져 온 난제다. 특히 상대적으로 업무 강도가 높고 수익성 낮은 분야의 지원을 전공의들이 기피하면서 필수의료 인력 부족은 심각한 상태다.

정부는 필수의료를 ‘긴급하게 제공하지 못하면 국민 생명에 심각한 위협을 주는 의료로써 수요 감소 등으로 제대로 제공되기 어려운 의료서비스’로 정의하고 있다. 중증·응급, 소아, 분만 등 생명과 직결된 분야가 꼽힌다. 이들 분야는 의료사고 위험이 높은 데 비해 수가는 낮게 책정되는 등 보상이 적다보니 외면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의료인들의 하소연이다.

지난해 서울의 한 유명 상급병원에서는 근무 중인 간호사가 뇌출혈 수술을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또 인천의 대학병원에서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부족해 입원실을 폐쇄하는 등 필수의료 붕괴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외에도 산부인과, 외과, 응급의료과 등이 모두 전문의 지원자 급감으로 위기다.

의대 정원은 2006년 이후 18년째 3천58명으로 묶여 있다. 필수의료과 지역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지만,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 탓에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국내 의사 수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크게 부족하다. 2020년 기준 인구 1천명당 의사 수(한의사 포함)는 2.5명이다. 노르웨이(5.1명), 독일(4.5명) 등은 물론이고 선진국 대부분이 우리보다 많다. OECD 평균은 3.7명이고, 우리 아래로는 멕시코(2.4명)뿐이다. 인구에 비례해 의대 졸업자가 OECD의 절반 수준에 그친데 따른 결과라고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전문과목별 의사 인력 수급 추계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수준의 의사 공급이 지속될 경우 2035년에는 최대 2만7천여명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됐다. 아울러 필요한 의사 수를 맞추려면 매년 1천500명씩 의사를 더 뽑아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의대 정원 확대가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라며 여전히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의료계는 “현재 시스템의 개선 없이 단순히 의대 정원만 확대해선 필수의료 인력을 확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의료수가 조정 등 필수의료 분야에 의사가 뛰어들 만한 유인 동기를 마련하는 게 먼저라는 것이다.

최근 들어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인력 부족 문제가 주목받으면서 의대 정원 확대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논제가 되고 있다. 의료계의 정당한 지적은 수용해 풀어나가되 의대 정원 확충도 병행해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의사 4천명을 10년간 증원하는 방안을 내놨다가 의료계의 강한 반발로 무산된 적이 있다. 이번엔 기득권 지키기가 아닌 국민 건강의 미래를 걱정하는 거시적인 자세로 조율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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